바이든 ‘우향우’ 전략…진보 주장 멀리하며 “중국에 맞설 것”

워싱턴포스트 “바이든, 온건층 향해 적극적 행보”
바이든, 경찰 예산 삭감·대법원 개편 등 진보 요구 외면
“‘법과 질서’·인종 평등, 선택 아냐…둘 다 가능”
트럼프 “바이든은 급진 좌파” 공세 막는 효과도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의 톨레도에서 대선 유세를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12일(현지시간) 이번 대선의 격전지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 일대를 돌았다.

바이든 후보는 오하이오주에서 “모든 미국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는 (나의) 무역 전략이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중국의 무역 유린에 맞설 것(stand up to)”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후보는 또 “트럼프는 재앙적인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노동자들과 소비자들, 농민들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오하이오주는 ‘러스트벨트(쇠락한 철강·공업 지대)’에 속하는 대표적 지역으로, 백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2016년 대선에선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년 전 트럼프가 오하이오주에서 내세웠던 ‘경제 포퓰리즘’을 바이든이 꺼냈다”고 13일 보도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우향우’ 행보를 택한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백인 노동자들은 우리(민주당)가 그들을 잊었다고 생각한다”는 반성의 말까지 던졌다.

WP는 그러면서 “바이든이 온건한 유권자들을 향한 적극적인 행보를 점점 더 늘리고 있다”면서 “‘반(反) 트럼프’ 정서를 활용하고, 중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굳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바이든 후보의 우향우 전략에는 두 가지 고민이 있다. 과연 중도·보수층 표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하는 의문과 민주당 내부 급진주의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까 우려다.

이에 대해 WP는 바이든 후보의 중도 전략에 대한 “민주당 내의 비판 목소리는 크지 않다”면서 “4년 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했던 반면교사”라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소모적인 분열을 하지 않고 무조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눌러야 한다는 의지로 민주당이 뭉쳐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자들이 지난 9월 30일 펜실베이니아주 그린스버그 역에서 다른 유세를 위해 기차를 타고 떠나는 바이든 후보를 보기 위해 모여 있다. AP뉴시스

진보 주장과 거리두기…“나는 ‘대법원 개편’ 팬이 아니다”

WP는 바이든 후보의 정치적 기반이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들보다 더 진보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가 치열했던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민주당 내의 진보 세력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특히 바이든 후보는 중도 노선으로 유턴하면서 진보 일각의 주장을 멀리하고 있다. 보수가 우세한 미국 연방대법원을 진보 성향을 바꾸기 위해 대법관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법원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를 바이든 후보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든 후보는 13일 “나는 대법원 재구성(court-packing)의 팬이 아니다”라고 터놓고 말했다. 대법원 확대 개편에 우려를 갖고 있는 보수·중도층 표심을 의식한 조치다.

바이든 후보는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이후 거세진 경찰 예산 지원 중단·삭감 주장에도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의 우향우 노선은 전략적 판단의 결과다. 바이든 후보는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해 세 가지 행동지침을 세웠다고 WP는 보도했다.

첫째, 분열적인 의제를 피하고,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식탁 대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 접전 지역에서 ‘반 트럼프’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셋째, 실행력 없는 이론주의자(ideologue)’가 아니라 안전한 대안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6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의 게티즈버그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바이든 “법과 질서·인종 평등, 선택 아냐…둘 다 가질 수 있다”

바이든 후보는 중도층 표심을 얻기 ‘통합(unity)’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는 “대선에 승리할 경우 공화당 당적을 가진 사람도 바이든 행정부에 기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이든 후보는 또 “나에겐 ‘푸른 주(blue states·공화당 우세지역)’나 ‘붉은 주(red states·민주당 우세지역)’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권 후보가 “내겐 영·호남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바이든 후보는 미국 사회의 고질병인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균형을 찾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사망 항의 시위가 번지자 백인 표심을 겨냥해 “법과 질서”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바이든 후보는 “미국에서 ‘법과 질서’와 인종 평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 있다”는 대안을 들고 나왔다.

바이든 후보가 지난 6일 미국 남북전쟁 당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던 펜실베이니아주의 게티즈버그를 찾은 것도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였다.

바이든 후보는 이곳에서 “오늘, 우리는 또다시 ‘분열된 집(house divided)’이 됐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미국 통합을 강조하면서 “분열된 집은 설 수 없다”고 말했던 명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WP는 “게티즈버그는 당초 바이든 캠프가 대선 출정식 장소로도 검토했던 곳”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대선 후보 첫 TV토론에서 ‘프라우드 보이즈(백인 우월주의 폭력조직)에 ‘물러서서 대기하라’고 말한 뒤 바이든 캠프가 급히 게티즈버그 방문 일정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극명한 대조를 보이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열렸던 대선 후보 첫 TV토론에서 발언하는 모습. AP뉴시스

‘우향우’ 전략…트럼프 “급진 좌파” 공세 막는 효과도

바이든 후보의 중도 전략이 중도·보수층 표심을 이끌어내고, 민주당 내부 급진주의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였다가 2018년 숨졌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은 매케인 의원의 지역구였던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신디는 바이든의 중도 전략에 대해 “그것은 온건한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내가 그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는 크지 않은 상태다.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했던 스티브 도엘더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서 바이든은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후보는 오랫동안 중도주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중도층을 중시하는 우향우 행보는 그에게 딱 알맞는 노선이라고 바이든 참모들은 설명했다.

중도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막는 효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를 ‘급진 좌파’라고 공격했다. 중도 노선으로 유턴하면서 이 같은 공세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이든 진영의 계산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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