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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클럽 음악’에 세계가 들썩, ‘이날치’ 일냈다

데뷔 1년 만 돌풍…한국관광공사 영상 2억7000만회 웃돌아
지난 5월 정규 1집 ‘수궁가’ 판소리·팝 버무려 감각적
“판소리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감각적인 클럽 리듬과 판소리를 버무린 음악으로 세계인을 홀린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의 소리꾼들. 이들의 노래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사위를 곁들인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영상은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조회 수 2억7000만회를 웃돌고 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나래 안이호 권송희 신유진. 김지훈 기자


서울 홍대 작은 클럽에서 데뷔 공연을 치른 지 1년여. 판소리와 팝을 버무린 이 독특한 신예 그룹은 데뷔 직후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결국 세계를 홀렸다. 팔짱 끼고 보려 해도 어깨와 발이 들썩이는 무서운 중독성에 힘입어서다. 대표곡 ‘범 내려온다’ 등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독특한 춤사위를 곁들인 한국관광공사 영상 3편의 유튜브 등 온라인 조회 수는 무려 2억7000만회를 웃돈다. 해외 팬들의 찬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 한국인들은 이렇게 화답한다. “조선의 클럽에 온 걸 환영하오.”

트렌드에 빠른 독자라면 진작 알아챘을 이 그룹은 이날치. 영화음악 감독이자 어어부프로젝트, 비빙, 씽씽밴드에서 활약한 베이시스트 장영규를 주축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시스트 정중엽, 씽씽에서 활약한 드러머 이철희, 소리꾼 권송희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가 결성한 팝 밴드다. 밴드명은 조선 후기 8명창 중 하나로 꼽혔던 이날치의 예명에서 따왔다. 국악의 새로운 매력을 알고 싶다면 얼른 이날치를 검색해보자. 신스팝·사이키델릭·펑크 등 감각적인 그루브와 구성진 우리 가락이 빚어내는 기묘한 조화에 정말이지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소리꾼 4명은 쏟아지는 관심이 아직도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악을 오래 하면서 전통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는데 이날치를 만나고 무장해제 됐어요. 이날치는 자유로움이면서 즐거움 그 자체죠.”(이나래) “판소리로 상업 시장에 살아남는 게 목표였어요. 취미처럼 시작한 일이 판이 엄청나게 커져 버렸죠.”(신유진)


이날치의 노래가 얹어진 한국광광공사 한국 홍보영상 서울 편의 한 장면. 안무에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참여했다. 유튜브 캡처


이날치는 지난 5월 첫 정규 1집 ‘수궁가’를 선보였다. 토끼 간을 구하려 육지로 나온 자라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수궁가’에서 인상적인 대목들을 골라 노래로 풀어낸 앨범이었다. 그리고 ‘별주부가 울며 여쫘오되’ ‘좌우나졸’ ‘어류도감’ 등 수록곡을 줄줄이 히트시켰다. 특히 초장부터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는 강렬한 훅으로 시작하는 ‘범 내려온다’는 ‘수능 금지곡’으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1일 1깡’ 대신 ‘1일 1범’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유튜브에는 “한 번만 보려 했는데 벌써 호랑이(범) 수십 마리가 내려왔다”는 등의 위트 섞인 고백도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날치의 시작은 2018년 장영규가 참여한 음악극 ‘드라곤킹’(용왕)에서 비롯됐다. 장영규는 관객의 큰 호응에 당시 함께 작업했던 멤버들과 밴드를 꾸리자고 마음먹었다. 국악의 세계화·대중화 같은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클럽에 온 듯 신명 나게 춤출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날치는 앞서 뮤지컬·음악극·창무극 등 다양한 장르 협업을 주도했던 젊은 소리꾼 넷이 정통 국악을 하며 느낀 ‘갈증’을 풀어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판소리는 노래, 연기,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엔터테인먼트예요. 그걸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권송희) “젊은 소리꾼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별로 없어요. 다양한 시도는 소리꾼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일이 됐죠.”(신) “1950년대 판소리와 지금의 판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이날치는 21세기의 판소리를 담아내는 실험이에요.”(안이호)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 매니지먼트사 잔파 제공


팀 색깔만큼이나 창작방식도 독특하다. 화성이 없고 문학성 짙은 판소리 성격을 극대화하려 리듬 악기로만 편성된 이날치는 비트를 정하고 노래를 얹어가면서 곡을 만든다. 기존 판소리보다 2배 이상 빠른 리듬을 추구한다. “옛날 버전은 지금보다 아주 느려요. 빠른 박자에 판소리를 맞추는 게 관건이에요. 기교를 압축적으로 넣어야 하죠.”(신)

1집을 내기 위해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합을 주고받으면서 팀워크도 끈끈해졌다. “소리꾼들은 기본적으로 솔리스트라서 그룹 활동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날치 연습실은 늘 설레요.”(권) “서로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을 민주적으로 결정해요. 그래서 목소리 특색이 다른 각각의 매력도 잘 살아났죠.”(안)

연일 놀라운 성과들을 쌓고 있는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틀에 얽매이는 것’이다. 소리꾼 넷은 “이날치가 늘 ‘날것 그대로의 밴드’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김보람 감독님은 안무를 짤 때 일부러 몸이 가려는 반대쪽으로 움직인다고 했어요. 저희가 음악에 접근하는 방법도 비슷해요. 한 번에 음악이 너무 잘 붙으면 다들 오히려 불편해하죠(웃음).”(안) “저희도 ‘중구난방’이 이날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해요.”(이)


이날치 정규 1집 '수궁가' 앨범 커버. 매니지먼트사 잔파 제공


최근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잇따라 인기 TV 프로그램의 초대를 받은 이날치의 스케줄은 올해 말까지 방송·라디오 출연, 공연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 공연이 너무 하고 싶다”는 이날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팬들과 호흡할 수 있는 여러 공연을 구상 중이다.

다음 작업도 뜨거운 관심거리다. 1집 앨범이 나온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대중의 시선은 벌써 이날치의 향후 행보를 궁금해한다. ‘수궁가’ 이후 다른 판소리 마당을 재해석한 작업물을 낼 것이냐는 물음에 이날치는 “무엇이든 우리가 재밌는 음악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올해 안에 ‘수궁가’ 대목 중에 생략된 부분을 싱글로 낼까도 생각 중이에요.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저희가 재밌다고 생각한 노래를 하게 될 겁니다.”(이)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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