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女축 女감독 시대…선두 선 ‘월드컵 1세대’ 송주희 감독

경주 부임 첫해 WK리그 ‘제왕’ 인천 1점차 위협
“‘여성다움’에서 자유로운 게 女감독 강점”
다음달 9일 플옵부터 WK리그 일정 재가동

송주희 경주 한수원 감독이 지난달 28일 홈구장인 경주 황성제3구장에서 열린 2020 WK리그 18라운드 서울시청과의 경기 벤치에 앉아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경기장에서는 ‘여자’선수가 아니라 ‘선수’니까요. 다른 요소에 가려지지 않도록, 선수의 기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감독이 할 일이에요.”

WK리그 경주 한수원의 첫 여성감독 송주희(43) 감독은 올해 돋보였다. 초보감독인 그의 지휘 아래 경주는 지난 시즌까지 리그 7연패에 빛나는 디펜딩챔피언 인천 현대제철을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지난 15일 마지막 라운드 뒤 양팀 사이 승점차는 겨우 1점. 인천이 리그를 지배한 8년 동안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 감독은 합리적으로 분업화한 훈련과 ‘큰언니’스러운 따뜻한 리더십으로 팀을 움직였다.

송 감독은 정규리그 일정이 끝난 다음날 팀이 있는 경주에서부터 자택이 있는 경기도 양주로 홀로 4시간 넘게 차를 몰아 돌아왔다. 시즌 내내 주말마다 친정과 시댁에 맡긴 두 아이를 보러 달린 길이다. 정규리그가 종료됐지만 그는 여전히 쉴틈이라고는 없다. 19일부터는 다시 팀으로 돌아와 3주 뒤 있을 수원도시공사와의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 여기서 이긴다면 이어질 인천과의 챔피언결정전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국민일보와 전화로 인터뷰한 17일에도 송 감독은 종일 아이들과 바쁜 하루를 보낸 터였다.

송 감독의 선전을 비롯해 올 시즌은 여자축구 역사에 기념비적 해였다. WK리그 8개 구단에 여성 감독이 4명. 타 종목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최근 수년 사이 남성 지도자들이 선수에게 폭행이나 성폭력 등 사례가 빈번했던 게 직접적 변화의 원인이었다. 송 감독 역시 9년간 코치 생활을 한 화천 KSPO를 떠나 첫 지휘봉을 잡았다. 2003년 사상 첫 여자월드컵에 진출했던 송 감독 등 선수 1세대는 이제 지도자로서도 새 시대를 맞았다.

8팀 中 4팀 女감독…여자축구의 새 시대

경주 한수원 박예은(가운데)이 지난달 28일 경주황성제3구장에서 열린 2020 WK리그 18라운드 경기 중 상대 수비를 피해 드리블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송 감독 부임 전인 지난 시즌 경주는 정규리그 2위를 했지만 디펜딩챔피언 인천의 아성을 위협하기에는 모자랐다. 인천과의 승점차는 27점, 경쟁자라고 보기도 민망한 점수였다. 그러나 올 시즌 경주는 보은 상무에게 당한 1패를 제외하면 패배가 없다. 특히 인천에게는 3번의 맞대결 중 2승 1무로 압도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12연승이라는 대기록도 썼다. 인천의 유일한 맞수로 불렸으나 지금은 해체된 이천 대교보다도 오히려 강력한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는 여성 지도자의 강점은 ‘선수다운’ 모습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다움, 즉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감독과 선수 모두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송 감독은 “여자축구가 발전한 일본에 가보니 선수나 지도자 중 그 누구도 훈련 중 몸을 부딪히며 태클하길 꺼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 역시도 선수 시절 마찬가지였지만 국내에서는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또 같은 맥락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성 지도자와 여성 선수 모두 영향을 받는다”며 “여성 지도자는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기에 더 낫다는 점도 송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 지도자의 장점이다. 그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저를 믿고 따르는, 둘 만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면서 “훈련장 바깥에서는 모르는 척하고 져주고 해야할 때가 있다. 그렇게 생기는 여자들끼리 특유의 연대감이라는 게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모두가 결국 선수가 가진 최상의 기량을 이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다.

갑작스레 찾아온 여성 감독 시대지만 송 감독은 그 때문에 져야할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에 여자축구 인프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 다시 여성 지도자들이 갈려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세대가 바뀌어 다시 남성 지도자들이 더 많아진다 해도, 여성 지도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가 나올 만큼 저희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쉽지 않은 감독·가정 ‘투잡’ 생활
송주희 감독의 과거 대표팀 선수 시절 경기 모습. 송 감독 등은 2003년 여자월드컵에 사상 최초로 진출해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화천 KSPO에서 코치로 일할 당시만 해도 송 감독은 가정으로 출퇴근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주 감독을 맡으면서는 주중에 일하고 1~2주에 한 번씩 왕복 8시간을 운전해 돌아와야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역시 축구인인 남편의 이해, 아이들을 돌봐준 친정과 시댁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감정적으로 힘들어 홀로 눈물을 쏟았던 적도 있다. 그는 “언젠가 아이가 ‘엄마 꼭 가야 돼?’라고 물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름 열심히 참다가 얘기했을 텐데…”하고 회상했다.

그러던 아이들도 요즘에는 송 감독을 부쩍 자랑스러워 한다. 그는 “아이들이 유튜브로 경기 중계와 제 인터뷰를 보고서는 스타감독이라면서 ‘인터뷰한 소감이 어떻냐’고 묻는다”며 웃었다. 그는 “아이들이 저를 집에서 밥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보다 같이 놀아주거나 축구 해주고, 공부 시키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공부 시키는 것만 빼면 다 좋다고 한다. 주말에 몰아서 아이들을 한번에 공부시키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경주는 다음달 9일 정규리그 3위 수원과 플레이오프 단판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 승자는 다음달 12일과 16일 인천과 챔피언결정전 1·2차전을 치러 최종우승자를 가린다. 경주 선수 6명은 휴식기 동안 열리는 여자 대표팀과 20세 이하 팀 경기에 대표팀 소속으로 소집됐다. 송 감독은 “선수들 근력이 줄지 않게 휴식과 훈련을 번갈아가며 병행할 계획”이라면서 “마지막 경기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꼭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