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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힘들어요’ 문자 택배기사, 하루 21시간 일했다” [인터뷰]

“코로나 대박 택배회사, 사람 살리는데 투자해야”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추모 국화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새벽 4시28분, 청년 김모(36)씨는 동료에게 장문의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글자 하나하나에 오랜 고민의 흔적이 서렸다. 그는 ‘집에 가면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 자고 또 물건정리(분류작업)를 해야 해요. 어제도 (오전) 2시에 집에 도착.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호소했다.

메시지는 안타깝게도 김씨의 유서가 됐다. 그는 나흘 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하던 36세 청년이 장시간 노동을 호소하다 끝내 스러진 것이다. 그는 한진택배 대리점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19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평소 아무런 지병이 없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한진택배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고인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정됐다”며 즉각 부인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물량이 늘면서 상황은 더 혹독해졌다. 올해 과로로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는 벌써 10명째. 해법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기업과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그저 ‘빠른 배송’ 말고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체 얼마나 더 희생돼야 비극은 멈출 수 있을까. 이날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를 가진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가 전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한진택배 노동자 故 김모(36)씨가 죽기 나흘 전 남긴 메시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씨는 어느 정도까지 격무에 시달린 것인가.

“택배노동자들은 보통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일한다. 일요일과 한글날 같은 국가공휴일에는 쉰다. 그런데 이번 한진택배는 한글날에도 그대로 배송을 시켰더라. 택배연대노조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한글날에 휴무를 하도록 했는데 유독 한진택배 노동자들만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인이 호소한 택배 물량 400개는 어느 정도 규모인가.

“택배노동자들은 대리점과 물건 개수가 아니라 구역별로 계약을 맺는다. 가령 서울 마포구 성산동 몇 번지부터 몇 번지까지는 A기사가 맡고, 망원동 몇 번지 사이는 B기사가 담당하는 식이다. 하나의 구역을 배송할 때 아무리 물량이 많아도 12∼14시간 사이에는 다 처리되는 규모다. 그런데 김씨 같은 경우는 이런 식으로 배송업무를 하면서 옆 구역을 하나 더 추가로 맡았다. 21시간 정도 일을 해야만 업무가 끝나는 양이었다. 물론 구역이 좁고, 배송하기 편한 곳은 400개도 금방 처리하겠지만 정작 이런 곳은 많지 않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업무가 어떻게 되나.

“아침 7시 주요 서브터미널로 출근한다. 내가 맡은 구역에 배송될 택배를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무보수로 진행되는 작업이다. 고인뿐만 아니라 다른 택배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최근 물량이 폭증해 분류작업을 마치고 나면 오후 2∼3시가 돼야 배송이 시작된다. 김씨는 이러한 분류작업에 소요된 시간을 포함해 총 21시간가량 일을 했던 것이다. 끼니는 잠깐 짬을 내서 먹는다. 어떻게든 빨리 물량을 처리하고 퇴근해야 쉴 수 있으니까 밥도 못 먹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 등이 택배노동자 고 김 모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간중간 공식 휴식시간은 없나.

“우리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시간당 근로계약을 하는 게 아니다. 시간당 근로계약을 해야 회사가 노동자에게 근무시간 중 얼마만큼은 휴식을 하도록 하는데 택배노동자는 그게 아니다. 건당 수수료로 계약하기 때문에 일을 다 끝내고 나서 쉬는 식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쉴 수 있는 상황이다. 또 택배 한 건당 수수료가 너무 낮기 때문에 결국 많은 개수를 처리해야만 돈이 된다.”

-택배 수수료는 건당 얼마인가.

“국내 택배산업이 시작된 이래 배송 수수료는 계속 떨어져 왔다. 택배 1개당 700원 내외다. 100개를 처리하면 7만원의 수익이 생기는 구조다. 수수료도 낮지만 유류비나 기타 물품비까지 다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많이 벌면 그만큼 비용이 더 많이 나간다. 차량 감가상각비 등 기타 비용을 다 포함하면 월 수입에서 40%가량이 빠진다. 한 달에 400만원어치 일을 해도 실제 주머니에는 240만원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쉬는 날 일부러 일을 더 하기도 하나.

“기본급이 있는 게 아니라 물량에 따라 건당 수수료만으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다보니까 일정 개수를 배송해야 최소한의 수익이 된다.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배송할 수는 없다. 택배기사들이 자기가 맡은 구역 안의 물량을 더 많이 처리하려고 하기는 한다. 하지만 죽을 정도로 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무보수로 일하는 7시간가량의 분류작업 업무를 붙여놔 버려서 노동자들이 과로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조 위원장(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0 전국민중대회 준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물량은 쏟아지고 누군가는 배송을 해야 한다지만 1인당 400개 물량을 줄일 수는 없나.

“사측은 문제 해결을 위해 ‘물량축소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성 없는 얘기다. 실제 도입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삭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평소 400개를 배송하는데 물량축소제로 100개를 뺀 300개를 배송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나머지 100개를 누가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가 떠오른다. 결국 새로 일을 시작한 사람이 100개를 맡을 텐데 돈벌이가 전혀 안 될 게 뻔하다. 사측에서 과로사 문제를 숨기기 위해 눈속임을 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해 7월부터 1년3개월가량 해당 대리점에서 근무해 막내급이라 할 수 있다. 경력 많은 다른 노동자들도 상황은 비슷한가.

“고인이 대리점 안에서는 막내급이지만 택배 숙련도로 따져볼 때 근무한 지 3∼6개월이면 거의 다 적응이 된다. 1년 이상 근무했으면 업무가 안착이 됐다고 본다. 그리고 어느 동네를 가든 배송이 어려운 구역이 있다. 그런 곳은 누구도 맡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원청이 인센티브를 주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지원 없이 ‘대리점 소장 너희가 알아서 처리해’라며 떠미는 식이다. 그러면 소장 입장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제일 만만하고 착한 사람에게 계속 떠밀 수밖에 없다. 과로사 문제는 원청사가 이러한 상황을 구조적으로 만든 것이다. 한진택배사가 책임져야 하는 이유다.”

진경호(가운데)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뿐 아니라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끊이지 않는다.

“과로사는 예견됐고 구조적인 문제다. 코로나19로 물량이 급증하면서 과로사 국면으로 확 넘어간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것을 일단 멈추기 위해서는 공짜 노동으로 진행되는 ‘분류작업’을 방치하지 말고, 상시인력부터 투입해야 한다. 그러면 과로사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다. 나머지 구조적 문제는 천천히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즉각 실행돼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야 사람이 죽는 상황을 멈출 수 있다. 택배회사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영업이익이 3∼5배 넘게 뛰었다. 이 가운데 10분의 1 정도만 비용을 투자하면 분류작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사측과 노동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해야 한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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