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닐 수거함이 또 사라졌다, 인천 ‘비닐 대란’ 재발 [이슈&탐사]

[값싼 쓰레기 정책의 역습] ①2차 대란 시작됐다


폐기물 자원순환 시스템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철저한 시장 논리로 유지돼왔다. 아파트가 수거업체에 재활용 폐기물을 팔면 수거업체가 다시 선별업체에 팔고, 선별업체가 다시 상위 재활용 업체에 되파는 것이 현재 한국의 자원순환 구조다. 이 구조는 폐기물 가격이 떨어지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 동남아 등 폐기물 수입 시장이 문을 걸어 잠갔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폐기물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떨어지자 도산하는 업체가 발생하는 등 폐기물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돈이 안 되는 폐기물은 그저 쓰레기다. 시민의 일상을 흔드는 쓰레기 대란이 발생하는 구조다. 환경 문제를 시장 논리에만 맡겨 발생한 문제다.

상품성이 떨어진 폐기물은 자원순환 고리에서 이탈해 매립·소각된다. 그런데 그 양이 매년 급증해 처리 비용이 수직상승하고 있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불법 투기(投棄) 브로커가 양산되고, 쓰레기 산이 생겨난 이유다. 업체가 흔들리니 자원순환의 말단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빈곤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한계상황에 내몰린 위태로운 자원순환 시스템 구조를 4회에 걸쳐 해부해 봤다.

다시 터진 비닐 수거 거부 사태
지난 18일 찾아간 인천시 부평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 유리병, 캔,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모으는 바구니가 줄지어 놓여있었는데, 비닐 수거함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안내문은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깨끗했다.

‘폐비닐 수거가 안 되니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주세요.’

이 안내문이 붙은 건 폐기물 수거 업체의 거부로 아파트가 쓰레기 대란을 겪었던 지난주부터였다. 아파트 경비원은 “원래 수거해가던 사람들이 더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고, 지난주 업체를 바꿨다. 그런데 새로 온 업체가 비닐은 못 가져가겠다고 하면서 이번 주부터 재활용으로 따로 분리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비닐은 분리배출 대상이지만 수거업자들이 두 손을 들자 별수 없이 법을 어기게 된 셈이다.

지난 18일 인천 송도동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폐기물이 쌓여있다.

한 아파트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인근 다른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도 ‘비닐류 재활용 안 되니 종량제 봉투에 버려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인천 연수구 소재 아파트 두 단지에서는 ‘깨끗이 세척한 비닐만 분리배출 해 달라’는 기존 안내문 위에 ‘비닐류 재활용 수거 불가’라는 새 안내문이 덧붙여져 있었다. 송도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미화원은 “겨우 사정사정해서 그저께 플라스틱을 치워 준거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구 쌓여있었다”며 “여기도 비닐은 종량제 봉투에 버리고 있다. 옆 단지도 재활용 쓰레기가 말도 못 하게 쌓였다가 며칠 전에 한 번 치웠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제2의 쓰레기 대란’ 전조증상이 인천에서 목격되고 있다. 재활용품 수거 지연을 겪고 있는 아파트가 인천 곳곳에서 포착됐다. 주민들은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이는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수거 업체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사이 재활용 시장에서 가장 ‘돈 안 되는’ 상품인 폐비닐이 우선 거부 대상 품목으로 올라와 그대로 폐기 처리되는 상황이다.

인천의 재활용 시스템을 망가뜨린 건 폐기물처리업체 한 곳에서 지난달 발생한 화재였다. 인천에서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A씨는 “플라스틱과 비닐의 단가 인하, 제대로 안 되는 분리수거 문제 때문에 원래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한 달 전 재활용 선별장 한 곳에 불이 나면서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폐기물 처리업체 한 곳이 문을 닫자 지역 자원 순환 시스템 전체에 정체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인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재 한 번에 흔들린 자원 순환
사건은 지난달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일 인천 남동공단의 한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큰불이 나 9시간 만에 꺼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선별업체의 설비가 모두 불에 타면서 당분간 문을 닫게 됐다. 선별업체 대표는 “복구하는데 6개월~1년은 걸릴 것 같다”고 시청에 보고했다. 선별장은 수거된 폐기물 중 재활용 가능 상품을 분류해 재활용 공장 등에 되파는 자원 순환의 관문 같은 곳이다. 해당 업체는 인천의 아파트에서 나오는 재활용 폐기물 30% 이상을 받아 처리해 왔었다.

선별장 한 곳이 사라지면서 인천의 재활용 수집·운반 업체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수거한 폐기물을 팔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며칠 뒤 인천시청은 회의를 열고 인천과 김포 등 재활용품 선별장 5곳에 화재가 난 선별장 물량을 나눠서 소화하도록 배분했다. 시청 관계자는 “인천 안에서 분산을 하다 보니 (물량을 나눠 가져간) 선별장들에도 일부 과부하가 걸릴 순 있지만 수거가 중단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난 18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 재활용 폐기물이 쌓여있다.

하지만 추석이 지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아파트에서 수거해야 할 쓰레기는 늘어나는데 이를 보낼 곳이 줄어들면서 수거 스케줄이 자꾸만 밀렸다. 지난 17일에는 인천의 수거·운반업체 대표들이 모여 비상회의까지 열었다. 이날 모인 대표들은 “대란 직전의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수거한 쓰레기를 선별장에 가져가 처리하는 시간이 몇 배로 늘었다. 수거업체들이 가장 바쁜 오전 시간에는 선별장에 들어가려는 재활용 수거차량들이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 수거업체 관계자는 “수거 트럭을 모는 기사들도 기존에는 저녁 6~7시면 퇴근했는데 요즘은 저녁 10시는 돼야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제가 새벽 6시에 일을 나가요. 나가서 트럭 한 차 수거를 해서 인천시에서 가라고 한 선별장에 가면 오전 9시에요. 원래 가던 선별장은 가까웠는데, 여기는 머니까. 근데 더 문제는 한번 가면 차에 실린 쓰레기 붓고 나오는데 3~4시간이 걸려요, 선별장도 포화상태라. 점심 먹기 전에 나오면 고마운 그런 상황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하루에 돌아야 할 아파트가 6~7단지인데 2~3단지밖에 못가서 다 미뤄지는 거에요.”(수거업체 대표 B씨)

B씨의 말처럼 지난 19일 방문한 해당 선별장은 쓰레기로 포화상태였다. 수도권의 다른 선별장과 비교해도 폐기물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한 선별장은 당분간 토요일에는 쓰레기를 받지 않기로 했다. 다른 선별장들도 이 달 초부터 ‘반입을 잠깐 멈춘다’는 공지를 수시로 보내고 있다.

선별장이 반입을 받지 않아도 수집·운반 업체 입장에서는 아파트 쓰레기 수거를 멈출 수 없다.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수거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수거한 쓰레기를 갖다 놓을 곳이 없으니 우리 집하장에다가 그냥 쌓아둘 수밖에 없다”며 “죽기 살기로 빼서 마당에 쌓아두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날 찾은 인천의 한 수거업체에는 미처 선별장에 보내지 못한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 업체는 지난달 화재가 난 선별장에 수거한 플라스틱 대부분을 보내던 곳이었다. 선별장 화재 이후 수거업체인 이곳의 집하장은 소규모 선별장을 연상케 할 정도가 됐다. 해당 업체의 직원은 “원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쓰레기 물량이 많은데 불이 나고 나서 선별장으로 반입이 잘 안되니까 평소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증하는 폐기물 화재
쓰레기가 쌓이면 다시 불이 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수도권에서 선별장을 운영하는 D씨는 “폐기물 시설에서 불이 나는 원인은 주로 배터리다. 배터리 제거가 안 된 장난감이나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같은 게 많이 섞여서 오는데, 날씨가 습하고 스파크가 튀면 여기서 불이 난다”고 했다. 이 불씨가 쓰레기더미로 옮겨가면 화재로 이어진다. D씨는 “체감 상 올해 특히 불이 더 많이 난 것 같다. 자연발화도 있지만 쓰레기는 너무 쌓이고 처리비용은 비싸니까 고의로 불을 내는 곳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전국의 폐기물 업체 곳곳에서 화재가 잇따랐다. 20일 새벽에는 경남 김해시의 한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서 불이 나 50분 만에 꺼졌다. 지난달 19일에는 평택의 폐기물 재활용시설에서 화재 가 나 외국인 근로자 2명이 숨졌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20일까지 폐기물처리시설과 재활용시설, 기타 위생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92건에 이른다. 통상 수개월 걸리는 화재 조사가 완료돼야 통계 수치에 반영된다. 최근 서너 달치 화재는 채 집계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동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수거업체들은 무작정 쓰레기를 쌓아 놓기가 어렵다. 인천시청은 지난 15일 폐기물 처리 상태 점검을 시작하겠다는 공문을 각 업체들에 보냈다. 수거업체들은 아파트 수거를 그만둘 수도 없고 집하장에 마냥 모아두기도 힘든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호소했다. “폐기물을 쌓아놓지 말라고 검사하러 나온다는 건데, 보낼 곳이 없는 걸 어떡하느냐”고 C씨는 말했다.

결국 재활용 시장에서 가장 애물단지인 폐비닐부터 수거가 안 되기 시작했다. 폐비닐은 재활용품 단가는 낮고 처리비용은 높아 수거업체들에게 적자를 보게 만드는 품목 중 하나다. 화재 이후 멀어진 선별장 때문에 물류비가 늘고 순환이 어려워지자 수거업체들이 처리비용이 비싼 비닐부터 포기하게 된 것이다. 선별장들이 비닐 처리비용을 올리기로 한 것도 원인이 됐다. B씨는 “몇 년 전 비닐 대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재활용되는 것까지 종량제 봉투에 넣는다고 하겠느냐”며 “비닐은 특히 온갖 더러운 게 많이 묻어 나와서 재활용되는 것보다 폐기물로 처리하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나가서 당시 수거거부를 했던 건데, 지금 그때 시점으로 되돌아 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도 시간문제

환경부는 지난 16일 추석 연휴에 재활용 폐기물 수거량이 증가했지만 수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체적으로는 전국 154개 민간선별장의 수거·선별 상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국 민간선별장 보관량은 총 허용량 대비 35.9%, 재활용업체(비닐·플라스틱 기준) 보관량은 총 허용량 대비 34.5%라고 발표했다. 추석 연휴 후 늘어난 수거량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만 수도권 등 재활용품 발생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일부 선별장의 보관 가능량을 한시적으로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문제가 발생한 인천시청 관계자도 “명절 이후에 쓰레기 양이 너무 많은데다 평소보다 선별장 한 곳이 없기 때문에 일부 수거 지연은 있지만 이미 (선별장 분산 조치로) 완료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폐기물 업계 관계자들은 환경부와 지자체의 인식이 현장 상황에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항의를 해도 시에서는 ‘아파트들에 단가인하 공문을 보내 드릴까요’ 정도의 답변밖에 내놓지 않는다”며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 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D씨도 “환경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몇 백억원을 들여서 재활용 분리수거 도우미를 둔다고 하는데 사실 현장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비닐류 재활용 안되니 종량제 봉투에 버려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수도권 다른 지역도 언제든지 인천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경기 북부에 집하장을 둔 한 수거·운반 업체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해 인천의 선별장에 물건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이 곳 역시 물량을 제때 소화할 수 없어 집하장에 쓰레기를 그대로 쌓아둔 상황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 문제가 장기화 되면 곧 아파트에서 배출 자체가 어려워 질것”이라며 “몇 년 전부터 비닐대란, 플라스틱 대란이 난다고 방법을 연구 해달라고 요청을 드렸는데 아직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쓰레기 대란은 예견된 현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은 화재 때문에 문제가 수면위로 빨리 올라왔을 뿐 다른 수도권 지역도 재활용 생태계에 균열이 생긴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의 경우에도 최근 몇몇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비닐을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버리도록 안내하다가 문제가 됐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수거업체들이 재활용 분리배출이 잘 안되는 몇몇 단지에서 비닐을 받지 않으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당 아파트들에는 가격연동제를 시행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수거 단가를)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임주언 박세원 기자, 전웅빈 문동성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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