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내 아이 죽인 음주운전자, 사과없이 반성문만 다섯번” [인터뷰]

엄마 기다리던 6살 음주운전 차량에 참변
술냄새 풍기며 아들과 장례식장 온 가해운전자
靑청원 11만명 돌파, 유족 “음주운전은 살인”

이씨는 "둘째는 웃는 모습이 예뻐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았다. 그만큼 밝았던 아이"라며 떠난 아들을 추억했다. 오른쪽은 지난달 6일 사고 직후 현장 모습. 가해 운전자 A씨의 SUV가 들이받은 가로등이 쓰러져 있고 아들의 사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씨 제공

여섯 살 둘째 아이가 떠난 지 벌써 한 달 하고 보름이 더 지났다. 세 살 터울의 큰아들은 동생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충격을 받았을 큰아들이 걱정돼 엄마, 아빠는 아직도 숨어서 운다.

둘째는 햄버거 가게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음주운전 차량에 변을 당했다. 가해 운전자는 조기축구 모임에 갔다가 낮술을 마시고 인사불성 상태로 운전석에 앉았다. 최근에야 언론에 보도돼 국민적 공분을 샀던 바로 그 사건이다.

부모는 동생 이야기에 극심한 우울감을 보이는 첫째를 위해 한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해왔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건이 계속되자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지난 6일 국민청원을 올려 어린 아들의 허망한 죽음을 털어놨고 음주운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아빠 이모씨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도 간절한 호소를 이어갔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보다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는 “가해 운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려거든 차라리 우리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로 나를 잡아가 달라”고 분노했다.

단 3분 만에, 행복은 악몽이 됐다
사고는 지난달 6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발생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던 길,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엄마는 인근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던 때였다. 매장 안 사람들을 배려해 엄마는 두 아들을 잠깐 밖에 서 있게 했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장난스럽게 미소를 주고받던 모자의 행복은 단 몇 분 만에 악몽으로 변했다. 엄마가 주문번호 확인을 위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뒤쪽에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본 장면은 끔찍했다. SUV 차량에 들이받힌 가로등이 꺾인 채 쓰러져 있었고 거기에 머리를 맞은 둘째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옆에 선 첫째는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씨는 “카드 결제 내역을 보니 오후 3시26분에 아내가 음식을 주문했더라. 그다음 3시29분에 119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며 “단 3분 사이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대가 도착하고도 둘째는 피를 흘리며 한동안 거리를 헤매야 했다. 코로나19와 의료진 파업 사태가 겹쳐 가까운 응급실 세 군데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던 사건 당일 이씨는 회사에서 당직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는 “오후 3시40분쯤 아내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더니 ‘오빠 ○○이 죽는다’는 소리만 남기고 끊겼다. 이후 다른 가족에게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데 오후 4시10분쯤 의사에게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며 “오후 4시20분쯤 병원에 도착했는데 9분 후 아들의 사망 판정을 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 오후 3시29분, 아이가 사망한 시각 오후 4시29분. 단 한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씨는 “믿을 수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얀 패딩에 술 냄새… 가해자가 장례식장에 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가해 운전자인 50대 A씨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44%였다. 면허 취소 수준인 0.08%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그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고 조기축구 모임에 나가 술을 마셨고 그대로 운전대를 잡아 무려 7㎞를 달렸다. 이씨는 “우리 가족은 당연히 A씨가 구속된 줄 알고 있었는데 체포 직후 경찰이 집에 보냈다더라”며 “아예 대화가 안 되고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의 만취 상태여서 조사를 못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유족이 가해 운전자를 마주한 건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사고 이튿날 오전 7시반쯤, 이른 시간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처음 보는 두 남성이 나타났다. 이씨는 “허름한 하얀색 점퍼를 입은 나이든 남자 한 명과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캐주얼 차림의 남자 한 명이었다”며 “누군가 싶어 가까이 갔는데 술 냄새가 확 나더라”고 말했다.

‘어떻게 오셨냐’는 이씨의 물음에 이들은 “가…가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A씨가 구속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의 아버지와 아들이 찾아온 줄 알았다. 너무 화가 나 욕을 하며 쫓아냈다”며 “이후 처남이 우리 부부를 대신해 경찰서에 갔는데 두 사람이 뒤이어 들어왔다더라. 경찰에게 누구냐고 물으니 ‘저 사람이 가해 운전자’라고 말해 그제야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은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쭈뼛대기만 하다가 1분도 채 안 돼 나갔다”고 덧붙였다.

유족은 A씨가 장례식장을 찾은 것은 감형을 염두에 둔 계산된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어떻게 아들을 데려올 생각을 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자기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니 동정해달라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슬퍼하는 아빠를 처음 봤어” 9살 아들이 말했다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괴로움 속에 매일을 살지만 A씨의 사과는 받지 못했다. 합의는 없다는 유족 측 입장에 가해자는 발 빠르게 변호사를 선임했고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재판부에 5차례 반성문을 제출한 상태다. 이씨는 “도대체 뭐라고 썼을지 궁금하다. 정말 파렴치한 아닌가. 도저히 반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말 반성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진심을 전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 사과는커녕 시도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를 더욱 분노케 한 건 A씨와 함께 모임을 갖고 술을 마셨던 조기축구 회원들의 진술이다. 그들은 “A씨는 막걸리 1병반밖에 마시지 않았다” “A씨는 한동안 술과 담배를 끊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많이 마셨는지 모르겠다” “운전을 하려고 하길래 수차례 말렸다” 등의 말을 경찰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거짓말로 가해자를 옹호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그 회원들은 제대로 대리운전을 불러 집에 간 게 맞을까. 술에 취해 운전한 가해자를 끝까지 말리지 않고 뭘 한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씨는 “이제는 사과한다고 한들 받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힘들어하는 첫째를 볼 때면 그 마음은 더 커진다. 바로 옆에서 끔찍한 사고를 목격한 9살 형은 현재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동생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 이거 정말 싫어’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본인이 느끼는 상실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며 “첫째와 둘째는 코로나19 탓에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다. 동생이자 친구이자 분신이었던 존재가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아 한다”며 “얼마 전 장례식 이야기를 꺼내며 ‘나는 아빠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건 처음 봤어’라고 하더라. 너무 마음이 아파서 첫째 앞에서 울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청원이 답이 아니란 걸 압니다, 하지만…”
이씨 아내가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은 22일 오후 1시10분 기준 11만4184명의 동의를 얻었다. 내달 5일 마감하는 이 청원의 남은 기간은 보름 남짓이다. 이씨는 국민청원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고 했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대답을 듣는다 해도 형식적인 내용에 실망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청원이 간절한 이유는 떠난 둘째에게, 남은 첫째에게 올바른 사회 정의를 확인시키고 싶어서다.

이씨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분명 음주운전은 살인과도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만 다시 한번 강조해줘도 더 바랄 게 없다”며 “국민의 위로를 받고 10만명의 동참을 이끌어낸 것만 해도 저희는 만족한다. 하지만 ‘음주운전=살인’이라는 공식을 더 많은 분이 알아주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윤창호법의 시작이 된 2018년 ‘윤창호 사망 사건’ 당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며 처벌 강화 등 관련 대책 마련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6월 25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그러나 지난 7월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음주운전 사고는 오히려 눈에 띄게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전국 음주운전 사고는 총 827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469건) 대비 10.8% 늘었다. 이로 인한 부상자도 지난해 1만2093명에서 올해 1만3601명으로 많아졌다.

이씨는 “잘 만들어 놓은 윤창호법을 사법부가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 첫 판례들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나온다면 그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만약 가해자에게 가벼운 형량이 내려진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심정이냐면, 차라리 내가 술을 마시고 가해자 아들에게 해코지하고 싶을 정도다. 내가 교도소에 몇 년 살다 나오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 어느 부모라고 다르겠느냐”고 했다.

인터뷰 내내 강한 어조로 가해자 처벌을 외치던 이씨의 목소리는 딱 한 번 흔들렸다.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못다 한 얘기가 많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눈물을 머금고 진심을 전했다. “엄마,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늘 웃는 얼굴로 씩씩하게 형이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 꿈에서라도 장난감 사달라고 말해줘. 아빠가 꼭 사 들고 갈게.”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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