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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내용증명, 아모레의 상생은 거짓말” 점주들 울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에뛰드하우스 매장이 '임시휴업' 안내문을 붙여놓고 영업을 중단한 모습. 정진영 기자

“잘 나가는 제품은 ‘온라인 전용상품’이라고 가맹점에서 못 팔게 합니다. 손님이 물건을 찾아도 줄 수가 없어요. 툭하면 본사가 내용증명 보내고 재고가 3억원어치 쌓여도 1000만원에 가져갑니다. 그러면서 무슨 상생을 얘기합니까. (서경배) 회장 국정감사 나온다니까 시늉하는 거지.”

21일 서울 중구 일대에서 만난 아모레퍼시픽 로드숍 가맹점주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아리따움 점주·경영주협의회, 이니스프리 가맹점주협의회, 에뛰드하우스 경영주협의회와 잇따라 상생 협약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국감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협약이다” “알맹이가 빠졌다” “협약을 제대로 이행할지 믿을 수 없다”는 등 불신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진행된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가맹점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 이에 서 회장은 “가맹점주도 저희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앞으로도 가맹점과 더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짤막하게 준비된 답변을 내놨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모레퍼시픽-가맹점주 갈등, 왜…
아모레퍼시픽과 가맹점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온·오프라인에서 화장품 가격 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제품이면 값싼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쿠팡 등 이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가격 차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상생안이 나와도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가맹점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로드숍 가격이 조정되지 않는 한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폐점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임없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숱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식이다. 10만원대 화장품 세트가 온라인에서 할인가로 6만원대, 로드숍에서는 9만원대로 3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가맹점주가 본사에서 구매한 가격과 온라인 할인가가 비슷할 때도 있다.

취재에 응한 가맹점주 A씨는 “온라인보다 너무 비싸다는 손님에게 온라인 가격에 맞춰주려고 보니 본사에서 사온 가격이더라”며 “도저히 그 가격에는 팔 수 없어서 손님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또 다른 가맹점주 B씨는 “외국인 단골손님이 대량으로 물건을 사겠다고 해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팔았는데 다음날 ‘온라인에서는 40% 할인한다’며 전부 환불해 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간 제품 가격 차이에 대해 가맹점주와 아모레퍼시픽의 주장에도 간극이 크다. 가맹점주들은 정가의 55% 정도 가격에 공급받지만, 쿠팡엔 37% 선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한 가맹점주는 “어떤 때는 면세점에서 사는 것보다 공급 가격이 비쌀 때도 있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측은 “정확한 제품 공급가를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도 “오픈마켓 등 온라인몰과 가맹점의 공급가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오픈마켓 판매자에게 ‘오프라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가를 유지해달라’고 제안은 하지만 가격은 판매자의 자율적 권한이라 강제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오랜 불신이 불만과 불안으로…
현장의 가맹점주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생 협약이나마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는 오랫동안 불신이 쌓여온 탓도 크다. 한 가맹점주는 “아모레퍼시픽은 손님과 가맹점 사이에 문제가 발생해도 가맹점 쪽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내용증명을 보내기 일쑤”라며 “본사가 상황을 중재하지 않고 가맹점주에게 책임을 떠넘겨버리니 신뢰가 생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이번에 협약을 맺은 내용도 적용이 되긴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맹점주들은 LG생활건강처럼 온라인 직영몰에 대한 수익을 전부 가맹점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도 제안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온라인 직영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맹점과 공유하면서 그 비율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100%를 공유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있다는 입장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가맹점의 이익뿐 아니라 소비자의 매장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본사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로드숍이 올리브영과 경쟁해야 하는 대목도 불만과 불신을 빚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자사 브랜드 ‘마몽드’ ‘한율’ 등을 올리브영에 입점시킨 데 이어 올 초엔 ‘라네즈’와 ‘에뛰드하우스’까지 범위를 넓혔다.

이에 대해 가맹점주 C씨는 “올리브영에선 할인 비율도 높고 세일 기간도 훨씬 길다”며 “소비자들은 할인된 가격만 봐서 오히려 가맹점주들이 가격을 올려받는다고 생각해 ‘왜 비싼 거냐’고 따지곤 그냥 나가버린다”고 토로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밀리고 올리브영에 치이면서 코로나19까지 맞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재고도 골치다. 가맹점주들은 아무리 많은 재고가 쌓여도 본사에선 10%도 안 되는 가격에 사 간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이번 상생 협약에서 부진 재고는 특별 환입하고, 내년 1분기까지 폐업 시 상품을 전량 반품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이니스프리 매장이 폐업해 간판이 붙어있던 자국만 남은 모습. 정진영 기자

“차라리 폐점이 나을 수 있다”는 가맹점주들
아예 가맹 계약 만료만 기다리고 있는 점주도 있었다. 한 에뛰드하우스 직원은 “사장님은 매장에 안 나오신 지 오래됐다”며 “매출이 워낙 안 나와서 매장을 접으려고 연말에 계약 끝나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장사를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회 정무위 소속 유의동 의원에 따르면 2018년 말부터 지난 8월까지 20개월간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3개 로드숍은 661개가 폐점했다. 아리따움은 2018년 1186개에서 880개, 이니스프리는 750개에서 546개, 에뛰드는 321개에서 170개로 줄었다. 20개월 동안 약 30%의 가맹점이 문을 닫은 것이다.

폐점을 고민하는 한 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물건 파는 사람들쯤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걸 본사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한다. 가맹점이 잘 돼야 본사도 잘 된다고 생각하고 가맹점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으면 좋겠다.”

국민일보 취재에 응한 가맹점주들은 모두 익명을 원했다. 가맹점 지점명과 어떤 가맹점을 운영하는지도 기사에 나오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C씨는 “본사에 불리한 내용을 말하면서 실명을 밝히면 그 지점에 불이익이 온다”며 “인터뷰를 했다가 본사에서 물건을 주지 않아 고생하는 점주를 봐서 무섭다. 꼭 익명으로 부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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