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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젊은 날의 영정을 찍습니다” 스물 넷 ‘시한부’ 사진가

3화-‘20대 암 환자’ 최윤석씨의 생존기

대장직장암 4기 환자 최윤석씨가 직접 촬영한 자신의 영정. 오른쪽은 병원에서 검사 대기 중인 최씨의 모습. 최씨 제공

최윤석(24·사진)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마지막으로 예정됐던 날을 기억한다. 그해 5월 10일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6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의사는 최씨와 같은 상태의 대장직장암 4기 환자가 통상 그쯤 산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최씨는 다음 날 눈을 떴고, 약 1년6개월이 지난 10월 25일 여전히 살아 있다.

건장한 20대 청년에게 암이 찾아온 이유를 최씨도, 의사도 모른다. 명확한 건 진단서에 적힌 ‘완치 불가능’ 딱 다섯 글자뿐이다. 그래서 최씨는 덤덤하게, 또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기로 했다. 암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끝은 찾아올 테니 무기력하게 있을 시간이 그에겐 없다. 그가 지난 18일 국민일보와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한 이야기들이다.

감귤농장주 꿈꾸던 청년, 시한부가 되다

전북 완주에서 나고 자란 최씨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부모님이 운영하는 딸기 농장일을 도왔다.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 벌이도 했다. 그러다 완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한국도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만큼 완주에서도 감귤, 레몬 농장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제주 출신 친구의 아버지에게 관련 지식을 배운 뒤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주 출신 친구의 농장 일을 돕는 최씨. 최씨 제공

최씨가 직접 가꾼 레몬 농장. 최씨 제공

우선 레몬나무 묘목을 샀다. 1년쯤 키우면서 희망을 본 그는 토지 구매 등 농장 준비에 한창이던 지난해 4월 극심한 복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됐지만 나이가 어리니 체한 줄로만 알았었다. 병원 측도 초반에는 간단한 검사만 진행했다. 그러나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거듭된 검사 끝에 정확한 병명이 나왔다. 대장직장암 4기. 이미 복막,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2017년 있었던 혈변, 2018년부터 반복적으로 겪어온 심한 변비와 복통이 암의 전조증상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불룩했던 배도 살찐 게 아닌 복수 때문이었다. 대장에는 통각이 없는 터라 환자 대부분은 다른 기관에 전이된 후에야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최씨도 복막에 전이된 부분이 아파 병원에 갔던 거였다.

‘군 면제다.’ 의사가 “대장직장암 4기 환자 중에서도 심각한 상태이고, 이런 경우 평균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을 때 최씨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다. 최씨는 “‘내가 그렇게 아픈가?’ ‘그렇게 아픈 건가?’ 의아했다”며 “너무 당황스러우니까 안 좋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3주마다 항암치료…“한 주 더 살겠구나”

군 면제부터 떠올렸을 만큼 실감나지 않았던 ‘암 선고’는 어머니의 눈물을 본 순간 현실이 됐다. 최씨는 아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던 어머니가 남몰래 우는 모습을 목격한 뒤 “내가 큰병에 걸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들은 늘 개구쟁이 같은 최씨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이제 병으로 장난을 치냐”고 핀잔을 주던 그들은 최씨의 핼쑥한 얼굴을 보고 나서야 농담이 아님을 알았다.

최씨는 수술도 어려운 상태였던 터라 항암 화학요법을 시작했다. 치료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10~20년 유지되는 중심정맥관(케모포트)을 심장과 가장 가까운 정맥에 삽입했다. 3주에 한 번씩 서울의 병원을 찾아 이곳으로 항암제를 투여받았다. 48시간에 걸쳐 항암제를 투여하고 나면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견뎠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약한 진통제로 바꿨는데, 제일 낮은 단계의 약을 쓸 때쯤이면 어느덧 3주가 흘러 있었다. 그러면 다시 서울에서 항암제를 투여받고, 또 한 번 진통제의 힘을 빌려 통증과 싸웠다. 항암제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구토, 복통 등의 부작용도 겪었다. 최씨는 “구토 봉투를 5장씩 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첫 항암치료를 받는 최씨의 모습. 최씨 제공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난 지난해 11월, 자꾸 코피가 났다. 최씨는 “하필 6개월이 채워질 때쯤 출혈 증세가 심해져 정말 죽게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며 “병원에 문의했더니 다행히 항암제 부작용이었다”고 했다. 부작용은 사라졌고, 최씨는 생존했다. 그의 병이 원인불명이듯 그가 살아남은 이유도 알 수 없다. 담당 의사는 낙관적 전망에 대한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저 “오늘 항암제를 맞았으니 1주일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다독였을 뿐이다. 그가 지나친 희망에 실망하지 않길,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말길 바라는 마음에 건네는 위로였다.

최씨는 최근 36차 치료를 끝냈다. 17차 때부터 원래 쓰던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종류를 바꿨는데, 여기에도 몸이 적응하면 다른 약을 투여해야 한다. 최씨는 “새 약은 보험 적용이 안 돼서 약제비만 한 달에 500만원정도라고 한다”며 “현재로서는 지금 약에 내성이 안 생기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젊은 나의 ‘영정 사진’

최씨는 지난달 19일 SNS에 직접 촬영한 자신의 영정을 올렸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정갈한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그는 “‘젊은 날의 영정 사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진”이라며 SNS로 신청을 받아 다른 사람의 영정도 찍어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고, 잠시 관련 일을 한 적도 있어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다음 달 7일 유방암을 극복한 신청자와 만날 예정이다.

“암 환우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먼 곳으로 가신 분의 빈소에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영정으로 한 걸 봤어요. 젊은 나이에 사망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하니까 사진을 미처 준비 못하신 것 같더라고요. 프로필에 쓴 사진이면 잘 나오고 싶어서 찍은 걸 텐데 그게 최후의 사진이라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이왕이면 가장 젊고, 멋있을 때 사진을 남겨두자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대장직장암 4기를 선고받은 지 1년째 되는 날을 기념한 최씨. 최씨 제공

최씨는 얼마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이야기도 털어놨다. 그는 “6개월을 넘긴 뒤 ‘암도 이겨냈으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바리스타 되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투병 전부터 커피를 좋아했지만 농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암 진단 후 ‘6개월밖에 못 사는데 비싼 커피를 마셔보자’는 생각으로 커피에 더욱 빠졌고, 학원까지 찾아갔다. 향후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뒤 자격증부터 취득하는 게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최씨는 이외에도 ‘백두산 가보기’ ‘오로라 보기’ 등의 버킷리스트를 들려줬다.

커피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던 날. 최씨 제공

최씨는 자신의 암이 핸디캡에 불과하다고 했다. 치료하는 잠깐의 기간을 빼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저는 오래 살 거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자녀가 생길 수도 있는데 지금 아프다고 좌절해 있는 건 앞으로 만날 미래를 미루는 것 같아요. 누워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당장의 1분 1초도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불행이 찾아왔다고 좌절할 필요 없어요.
그 불행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삼아 미래를 바꾸어 가는 것도
삶을 살아가며 얻는 재미라고 생각해요.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소나기] 소소한, 와 당신의 이야. 거센 비바람에 지쳤을 때, 잠시 쉴 곳이 필요할 때 들러주세요. 당신과 꼭 닮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다독여 줄 거예요.

박은주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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