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

향년 78세로 세상 떠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국민일보DB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으로 1987년 삼성 경영을 시작했다. 그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의 삼성을 만들자”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등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뒤로 한발 물러나 있는 ‘뒷짐 회장’이 아니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임원들을 다그치는 ‘현장형 경영인’이었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배경에는 이 회장이 있었고,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은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87년 12월 1일 취임한 이 회장은 동유럽권의 붕괴와 세계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위기를 직감했다. 그는 93년 6월 7일 그룹의 핵심 임원 200여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로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골자는 ‘변화’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칼로 깎아서 조립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준 뒤 “내가 회장에 취임한 뒤 그렇게 변화를 부르짖었는데 고작 변한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질책하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지시했다.

앞서 그해 2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임원들을 불러 미국의 베스트바이(Best Buy) 전자 매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진열된 삼성 제품들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임원들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자.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는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임직원에게 1등과 2등은 천지 차이라며 반드시 일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직원의 사고가 바뀌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95년에 수원 공장에서 2000명의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150억원어치의 불량 휴대전화와 무선전화기를 태우게 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3년 삼성전가 경기 수원사업장을 찾아 전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국민일보DB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크게 도약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부분 1등 행진이 시작됐고, 96년에는 연평균 1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일류주의는 금융과 조선, 호텔, 건설, 테마파크, 병원 등으로도 퍼져나가 그룹 전체가 글로벌 일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위기에서 이 회장은 빛을 발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를 1년 앞두고 비상경영을 주문했고, 그룹 차원에서 3년간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자는 ‘경비 330운동’이 전개됐다. 96년 4월 그는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나니까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임직원에게 경고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삼성은 3년 뒤인 2000년 전 계열사가 흑자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이 회장은 2006년에 “창조적인 인재를 키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의 삼성을 만들자”면서 ‘창의’를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했다. 이때부터 삼성은 글로벌 차원의 ‘창의적 핵심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섰다.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인 25일 이 회장은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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