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100편 넘게 연기했지만 ‘배우’ 역할은 처음”

다음 달 18일 개막 연극 ‘더 드레서’ 선생님 역 배우 송승환
“배우 겸 제작자 잘 이해 돼”
공연계 “한 자리 띄어앉기 고통 극심”

다음 달 18일 개막하는 '더 드레서'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송승환. 그는 "극장이 좋은 이유는 일상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어려운 시간을 훌훌 털어내는 연극이길 바란다"고 했다. 권현구 기자


송승환(63) 피엠씨프러덕션 예술총감독은 근 20년 동안 제작자 겸 연출자로 이름을 떨쳤다. 대표적으로 브로드웨이 등 국제무대에 한류를 일으킨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가 그에게서 탄생했다. 세계인의 화제를 모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도 송승환을 수식하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1965년 9살 아역배우로 시작해 50여년을 연기와 동고동락해온 그는 “배우일 때 가장 큰 자존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예인’(藝人)이다.

다음 달 18일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오르는 ‘더 드레서’는 송승환을 사로잡은 연극이다. 2011년 명동예술극장에 오른 안톤 체홉 ‘갈매기’ 이후 9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더 드레서’를 택한 그는 최근 정동극장에서 본보와 만나 “나이든 배우로서 인생 3막을 여는 작품이 될 것 같다”며 “오랜만의 작품에 다음 무대를 같이 하자는 제작자 지인들의 연락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연극 '더 드레서' 컨셉 사진. 정동극장 제공


“지금까지 찍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합치면 100편을 훌쩍 넘을 거예요. 별의별 역할을 다해봤는데 정작 배우 역할은 한 적이 없었어요. 더구나 늙은 인물 연기를 제대로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큽니다.”

영화 ‘피아니스트’ 각본가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명 작가 로날드 하우드의 ‘더 드레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리어왕 공연을 앞둔 노(老)배우와 드레서 이야기로 송승환은 평생 배우로 살아온 선생님 역을 맡았다. 드레서 노먼 역으로는 안재욱과 오만석이 출연한다.

극장에서 출연 제의를 받은 송승환이 수많은 작품 중 ‘더 드레서’를 택한 이유는 선생님 역할이 자신과 꼭 알맞게 포개진다고 느껴져서다. 이 극을 국내 초연한 극단 춘추 문고헌 대표를 1983년 뉴욕에서 만났던 송승환은 이번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을 뒤져 1부만 남아있던 수기 대본 복사본을 어렵게 구했다. 그리고 작품을 읽어내려가면서 공감에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달 18일 개막하는 '더 드레서'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송승환. 그는 "극장이 좋은 이유는 일상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어려운 시간을 훌훌 털어내는 연극이길 바란다"고 했다. 권현구 기자


“선생님이 극에서 배우이면서 제작자예요.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됩니다. 연기 혼을 불태우다가도 경영자로서 배우 출연료를 깎으려고 애쓰죠. 갑을관계 전복을 재치 있게 그리면서 인생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연습은 늘 화기애애하다. 배우와 제작진 사이의 신뢰가 두터워서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개·폐막식 부감독 겸 폐막식 총연출을 맡아 송승환을 보좌한 장유정 영화감독 겸 연출가가 각색·연출을 맡았다. 장 연출가와 마찬가지로 안재욱 오만석 정재은 배해선 등 내로라하는 베테랑들도 송승환을 믿고 작품에 뛰어들었다.

“장 연출은 최근 영화 ‘정직한 후보’가 흥행해 영화 러브콜이 많은데도 흔쾌히 함께 해줬어요. 배우들도 다 선배급인데 저 때문에 후배로 고생을 하고 있죠(웃음). 연기를 정말 잘해요. 고마워요.”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본도 가장 먼저 외웠다는 송승환은 연습에도 늘 먼저 자리한다고 한다.


연극 '더 드레서' 컨셉 사진. 정동극장 제공


스타 배우들만 꿰찬다는 연극 ‘에쿠우스’ 앨런 역을 비롯해 같은 극 다이사트 역 등 무대에서 굵직한 배역들을 줄줄이 맡았던 그는 방송과 영화계도 넘나들며 50여년간 활약했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올림픽 직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가까이 있는 사람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고 글씨는 아예 읽기 어려울 정도다. 전자기기 음성지원 기능과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대본을 외우는 그는 지난해 안판석 감독의 MBC 드라마 ‘봄밤’에 출연하는 저력을 뽐냈다.

“안 감독이 처음 드라마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는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망설였어요. 그런데 감독이 ‘왜 못하겠느냐’며 용기를 줬죠. 이제는 익숙합니다. 시야가 조금 닫히니 오히려 상대 배우 목소리를 더 귀 기울여 듣게 됐어요. 배우로서 고마운 일입니다.”

송승환이 걸어온 길을 복기할 때 제작자로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 진출이 유리한 넌버벌 퍼포먼스에 한국적인 사물놀이 모티브를 결합한 ‘난타’는 1997년 국내 초연 이후 한국 공연 최초 누적 관객 1000만명 달성, 아시아 최초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오픈런 공연 등 진귀한 기록들을 연이어 써냈다. 송승환에게 ‘난타’는 ‘자긍심’의 동의어였다.


다음 달 18일 개막하는 '더 드레서'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송승환. 그는 "극장이 좋은 이유는 일상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어려운 시간을 훌훌 털어내는 연극이길 바란다"고 했다. 권현구 기자


“일제강점기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억눌려왔던 민족 정서가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분출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恨)이 ‘흥’(興)이 된 거죠. 그 흥을 담은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것도 2003년쯤이었어요.”

일이 너무나 고단해 ‘대체 왜 한다고 했을까’ 수없이 되뇐 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일도 자산이 됐다. 전통과 트렌드를 극적으로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은 평창동계올림픽은 1218대 드론으로 구현한 대형 오륜기 등 명장면들을 여럿 연출했다. 송승환은 “개성 강한 예술가들의 의견을 한데로 모으는 훈련”이 제작자, 또 선배 배우로서 큰 공부가 됐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8인의 한 명으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뮤지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합동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신시컴퍼니·오디컴퍼니·EMK 등 국내 뮤지컬 산업을 이끄는 제작사들이 뭉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배우·제작진 모두 굉장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송승환은 “특히 최근 민간 공연계에도 부과되는 ‘한 좌석 띄어 앉기’가 생업 측면에서 부담이 극심하다는 점을 뮤지컬협회 등을 통해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최근 들어 활기를 띠는 온라인 공연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고민을 덧댔다.

“춤과 노래가 버무려진 뮤지컬과 달리 연극은 특히 더 온라인으로 감동과 장르적 가치를 전하기가 매우 힘든 것 같아요. 갓 뜬 싱싱한 회를 통조림에 넣어 전하는 느낌이에요. 온라인은 그동안 공연에서 어려웠던 2차 수익 사업의 하나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극장 관객들이 ‘더 드레서’를 통해 얻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답은 ‘위로’였다. “바이러스로 일상에 매몰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어요. 하지만 사람은 잠시 고개를 들어 맑은 영혼을 바라봐야 하죠. 지친 심신을 다시 가득 채우는 극이 됐으면 해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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