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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일류’ 약속, 글로벌 삼성을 만들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지금의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삼성맨들에게 일류 마인드를 심어줬고, 이는 삼성이 흔들림 없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위기의 순간에는 빠르고 과감한 판단에서 비롯된 관리 능력을 앞세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창출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회장 취임사에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10조원을 밑돌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어섰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세계가 놀란 삼성의 변화 중심에는 일류를 강조했던 이건희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나온 ‘신(新)경영 선언’은 삼성을 국경을 넘어선 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초석이 됐다. 이 회장은 동유럽권의 붕괴와 글로벌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위기를 직감했고, 그룹의 핵심 임원 200여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로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했다.

당시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칼로 깎아서 조립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이 회장은 이 장면을 임원들에게 비디오로 보여준 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라”고 지시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을 중심으로 크게 도약했다. 삼성전자는 1986년 1메가바이트 D램 생산을 시작했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한 상태였다.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삼성은 생산량까지 늘려 글로벌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이 회장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삼성이 세계 최고 위치에 오를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2005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방문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1등과 2등은 천지차이라며 반드시 일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5년 경북 구미 사업장에서는 2000명의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150억원 규모의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를 태우게 한 일명 ‘애니콜 화형식’을 진행했다. ‘품질’을 믿어달라며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후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였던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1위로 올라섰고,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은 해외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했다. 삼성 고유의 디자인을 위해 그룹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는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2002년 4월 출시된 휴대전화 SCH-X430S(일명 ‘이건희 폰’)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중 처음으로 1000만대가 팔렸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2012년 14년간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노키아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 1위를 차지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갤럭시S, 갤럭시 노트 시리즈 등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2012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 1위를 질주하고 있다.

2004년 반도체 사업장에 방문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인재를 중요시했다. 1995년 삼성 공채에 학력 제한을 폐지하고, 학력과 성별·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다. 또 2006년 “창조적인 인재를 키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의 삼성을 만들자”면서 ‘창의’를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했다. 이때부터 삼성은 글로벌 차원의 ‘창의적 핵심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섰다. 연구개발 인력도 1993년 1만3000명에서 2016년 9만3200명(해외 포함)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회장은 위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IMF 외환위기를 1년 앞두고 비상경영을 주문했고, 그룹 차원에서 3년간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자는 ‘경비 330운동’이 전개됐다. 1996년 4월 그는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나니까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임직원에게 경고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으로 삼성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전 계열사가 흑자를 기록했다.

2011년 선진제품비교전시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고(故) 이병철 회장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업을 확장시켜 1위 기업을 향한 초석을 다졌다면,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보고 직접 발로 뛰면서 ‘글로벌 삼성’을 키워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과 TV·가전·스마트폰 완제품을 모두 만들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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