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와중에 스위스 비밀계좌 ‘역대 최고액’… 억만장자 늘어

갈 곳 잃은 유동자금 흡수한듯
아마존·페이스북 등 IT기업이 급등세
자산증식 비결은 ‘투자 유지’… 패닉셀 안돼

세계 주요국의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자산액 비교. 조사된 모든 국가에서 2019년(남색)에 비해 2020년(하늘색)의 자산액이 증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캡처

코로나19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각국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더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전보다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소재 롬바르드은행과 UBS 등 비밀계좌를 제공하는 은행들이 10여년 만에 역대 최고 수익을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주에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크레딧 스위스’도 비슷한 기대를 받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발(發) 경제난과 대조적이다. 국제통화기구(IMF) 통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4.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UBS는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이 지난해와 비교해 대폭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브라질, 독일 등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거대 부호들의 재산 증식이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똑같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FT는 “당시에는 부호들이 위기를 투자의 기회로 삼아 재산을 불렸다”며 “지금은 팬데믹을 틈타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을 흡수해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알리바바 등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유행 덕을 톡톡히 본 기술기업 수장들은 이런 흐름의 선두에 섰다.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각 산업별 자산액.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기술주와 보건 관련주가 급등한 것으로 확인된다. 파이낸셜타임스 캡처

미국 싱크탱크 ‘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대표이사는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자산이 730억 달러(약 71조원) 증가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의 자산도 각각 450억 달러(약 51조원) 이상 늘었다.

또 중국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의 자산은 올 한 해에만 45% 증가해 588억 달러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1998년 이래 최단 기간 최고액 증가 기록이다. 특히 중국에서 새로 억만장자 대열에 편입한 사람은 올 한 해에만 257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항공업과 서비스업, 여행업 등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 업계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고스란이 다른 기업의 자금줄이 됐다고 설명했다.

자산이 늘어난 부호들의 핵심적인 특징으로는 ‘패닉셀’ 대열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점이 언급됐다.

니콜 커티 스탠호프캐피탈의 자산관리사는 “연초에 주식시장이 휘청인 것에 비해 매우 빠르게 복구가 이뤄졌다”면서 “2월이나 3월초에 당황해 주식을 팔았다면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같은 시기에는) 주식을 계속 갖고 있기가 심리적으로 힘들겠지만 올해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FT는 주식 투자와 함께 금 매입을 억만장자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았다. FT는 지난 8월 금 가격이 온스당 2073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을 언급하며 “금 가격 상승은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안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은행업계와 자산관리사들은 이같은 현상을 예측하고 고객들에게 올해 내내 금을 매입하도록 추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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