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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벗는 ‘라이언킹’ 이동국 “나는 참 행복한 축구선수”

21세기 한국축구사 함께 한 ‘살아있는 전설’
26일 개인 인스타 계정에 은퇴 계획 발표
다음달 1일 대구 FC와 마지막 경기

지난해 6월 2일 상주 상무와의 K리그1 홈경기에서 전북 소속 200호 골을 넣은 뒤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동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지켜본 축구팬들에게 이동국이라는 이름은 한국 축구의 희망과 동의어였다. 새벽녘 TV 속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 5대 0 대패를 당하던 와중, 교체로 들어와 상대 골문에 겁 없이 중거리를 날리던 19세 신예는 어느새 K리그 최고령 현역이 됐다. 긴 세월 골문 앞에서 변함없이 벼락 슈팅을 날려온 그는 K리그 팬들에게도 단순한 선수가 아닌 리그를 상징하는 존재다.

오랜 시간 K리그를 대표해온 전북 현대의 현역 최고령 공격수 이동국(41)이 축구화를 벗는다. 이동국은 26일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했던 올 시즌을 끝으로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고 글과 육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은퇴경기는 이번 시즌 리그 최종전인 다음달 1일 대구 FC와의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홈경기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한 이래 23년 만이다. 경기를 나흘 앞둔 28일에는 은퇴 기자회견을 연다.

이동국은 K리그 기록의 사나이다. 데뷔 시즌 신인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 통산 547경기에 출전해 228골 77도움을 기록했다. 전북에서 기록한 건 360경기, 164골 48도움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통산 75경기에서 37골을 넣어 역대 최다 골 선수로 남아있다. 유럽 진출 시도 뒤 한동안 부진도 겪었지만 2009년 전북에 입단해 득점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 올해에도 팀이 어려울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은퇴 경기인 대구전에서 리그 우승에 성공한다면 총 8회 우승으로 동료 최철순과 함께 개인 K리그 통산 최다 우승이라는 기록도 쓴다.

대표팀에서 그는 젊은 시절 ‘혹사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각 연령대 대표팀을 비롯해 성인대표팀까지 불려 다닌 탓에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성인대표팀에서는 2018년 9월 6일 우즈베키스탄전에 이르기까지 총 105경기에 출장해 33골을 넣었다. 출장 수로 역대 공동 10위, 골 수로 공동 4위다. 다만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불렸음에도 월드컵 무대에서는 침묵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07년 대표팀 음주 파동 역시 그리 좋지 못한 기억이다.

이동국에게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붙은 별명만도 여러가지다.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2000년대 초 K리그 부흥기 트로이카로 불릴 당시부터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귀를 살짝 덮은 머리를 휘날리며 슈팅을 날리는 그에게 팬들은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구단과 대표팀을 오가며 자주 보여주던 거침없는 발리슛으로 ‘발리 장인’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최근에는 TV 육아 예능에 출연해 ‘대박이 아빠’라는 새 별명을 얻으며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동국은 은퇴를 알리는 메시지에서 자신의 데뷔팀 포항 스틸러스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해준 전북 구단,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저는 참 행복한 축구선수였던 것 같다”며 “제가 받은 관심과 사랑 그 이상의 행복을 더 많은 후배들이 느낄 수 있도록 그라운드 밖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동국은 어떤 진로를 택할지 구단에 아직 알리지 않았다. 구단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팬들과 직접 접촉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음달 1일 경기 직후 은퇴식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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