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무용+연극+홀로그램… 김주원이 빚은 ‘융합 예술’

정동극장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 연극·무용·홀로그램 융합한 혁신 공연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공연사진. 정동극장 제공

암전이 시작되면 무대를 원통형으로 둘러싼 스크린이 또렷해진다. 유영복을 입은 우주인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하면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윽고 스크린 뒤로 배우가 내레이션을 하며 걸어 나온다. 그의 옆에는 우아한 춤사위를 뿜어내는 무용수가 있다. 그러다 무용수는 배우가, 배우는 무용수가 된다. 연극과 무용의 요소를 한 무대에 엮어내더니, 걸음마다 스크린에 매화가 한 송이씩 피어날 때는 마치 영화 같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상징성을 부여받은 나비가 등장하면 비로소 전개가 시작된다. 억겁의 스침으로 만들어지는 인연과 이를 위한 소망의 날갯짓.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의 이야기는 ‘봄’에서 시작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 단비 같은 신작인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이 막을 올렸다. 정동극장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세계적인 발레리나 김주원이 출연과 동시에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연극과 무용, 홀로그램을 융합한 공연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혁신적인 공연으로 평가된다.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공연사진. 정동극장 제공

‘사군자_생의 계절’은 윤회를 거듭하는 존재를 통해 바라본 인연의 고귀함을 이야기한다. 김주원이 생각하는 인연에 대한 상념을 바탕으로 지이선 작가가 대본을 썼다. 특히 발레리나에서 아티스트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김주원이 본격적으로 한국적 색채를 담은 작품이라 의미가 짙다.

이번 작품은 한국적 소재인 매·난·국·죽 사군자를 모티브로 한다. 여기다 봄·여름·가을·겨울 콘셉트를 추가해 개연성을 잡았다. 사계절에 걸쳐 시공간을 초월한 두 존재가 사군자의 상징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는데, 4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인 듯 보이지만 결국 인연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1장 봄에서는 꽃에 홀려 길을 잃은 승려와 나비의 몸짓이 어우러진다. 2장 여름으로 넘어가면 바람을 가르는 검의 소리와 함께 무사의 칼춤이 눈을 사로잡는다. 무사는 검을 내려놓고 자유를 찾고 싶지만, 검에 혼이 깃들어 있어 쉽지 않다. 마침내 무사는 피투성이가 되고 나서야 붉게 물들어버린 검혼을 가만히 끌어안으며 해방한다. 1장이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매혹적인 움직임으로 전개됐다면, 2장은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안무로 구성됐다. 무용적 기교가 폭발하면서 연극적 요소도 고조된다. 1장은 배우가 내레이션을 읊는 독백이라면, 2장은 감정이 극에 달하는 모노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3장 가을은 공연 직후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한 부부의 마지막을 담았다. 1장과 2장은 배우 한 명의 내레이션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구성됐지만 3장은 2인극에 가깝다. 앞서 몸짓으로만 연기하던 김주원이 대사를 읊으며 인연의 절절한 마지막을 연기한다. 마지막 장은 홀로그램의 몰입감이 빛을 발휘한다. 극 시작을 알렸던 우주인이 공연 말미에 스크린에 다시 등장하면 그제야 의미가 분명해진다. 인연이 시작된 순간처럼, 수많은 생을 거쳐 반복된 이별과 만남의 춤이 펼쳐지면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시공간을 초월한 4개의 이야기는 홀로그램과 만나 의미가 깊어지는데, 스크린을 통해 꽃을 뿌렸다가, 비를 내렸다가, 텅 빈 객석을 보여줬다가, 다시 광활한 우주로 돌아오면서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김주원은 “홀로그램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라 무대적으로 새로운 표현 방식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은 이 기법 자체가 곧 메시지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공연사진. 정동극장 제공

이번 작품은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어벤저스’ 창작진으로 꾸려졌다. 세련된 연출 기법을 선보이던 창작자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정구호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했고, 영화 ‘기생충’ 음악을 맡았던 천재 뮤지션 정재일이 음악 감독으로 활약했다. 대학로 블루칩 박소영 연출가와 아크람 칸 컴퍼니 등에서 활동한 김성훈 현대 무용가도 이번 작품에서 김주원과 인연을 맺었다.

출연진은 배우와 무용수로 구성된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박해수와 ‘낭만닥터 김사부2’에 출연했던 윤나무가 배우로 출연한다. 국립발레단 출신 발레리노 윤전일과 김현웅은 작품의 몸짓을 풍성하게 만든다. 김주원은 배우와 무용수를 넘나든다.

김주원은 1998년 발레 ‘해적’으로 데뷔해 15년 동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2006년에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는데, 국내 무용단 소속으로는 최초였다. 2012년 발레리나 은퇴 후에는 창작자로서 저변을 넓히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