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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섭의 대기실] 게임을 좋아하는 팀

라이엇 게임즈 제공

LCK 아레나로 들어서는 담원 게이밍 선수들을 볼 때마다 한결같이 느낀 점이 있다. 이 선수들은 정말로 게임을 좋아한다. 대다수의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구성원들이 그렇겠지만, 담원 선수들로부터는 유독 게임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무 살을 넘긴 성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그들을 볼 때면 피카추 돈가스를 하나씩 사 먹고 피시방으로 향했던 학창 시절의 하굣길을 떠올리곤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 어떤 관계자는 “그것이 게이머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십분 동의한다.

올해 담원 선수들과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노동의 여부를 떠나 재미있었다. 기자는 늘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그들과 하는 경기 후 인터뷰가 즐거워 담원의 승리를 바란 적도 몇 차례 있었음을 이 글을 통해 고백한다.

담원 선수들이 게임을 열심히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너구리’ 장하권의 게임 열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졌다. ‘캐니언’ 김건부는 모든 선택에 근거가 있다. 특정 시간대에 왜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물으면 반드시 명쾌한 답을 들려준다. ‘베릴’ 조건희는 패치 때문에 챔피언의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늘어나면 몇 % 이상부터가 치명적인 너프인지 혼자 규정할 정도로 자신만의 명확한 게임 철학을 갖고 있다.

‘쇼메이커’ 허수는 올해 기자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선수였다. 올여름 기자의 취미 중 하나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허수의 프로 뷰를 돌려보는 것이었다. 단 0.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완벽한 플레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약 알파고의 LoL 버전인 ‘롤파고’가 등장한다면, 그를 상대로 1승을 따낼 확률이 0.001%라도 더 높은 건 ‘페이커’ 이상혁이나 ‘쵸비’ 정지훈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롤파고를 상대로 가장 오랫동안 접전을 펼칠 수 있고, 또 롤파고와 가장 근접한 수를 두는 건 허수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허수의 플레이는 정석적이며 빈틈이 없다. 그는 지금과 같은 실력자가 되기 위해 적잖은 고민과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담원의 에이스는 장하권이지만, 담원의 정체성은 허수다. 소환사명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무대의 주연배우보다는 지휘자에 가깝다. 허수의 플레이스타일이 곧 담원의 플레이스타일이다.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허수가 스크림 패왕에 그쳤을 땐 담원도 스크림도르에 머물렀다. 허수가 LCK의 개인 타이틀을 독식하자 담원은 국내를 제패했다. 허수가 자신의 단점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담원도 장점을 하나씩 늘려나갔다. 올여름 허수가 운영에 눈을 뜨자 담원은 ‘뇌절’과 가장 거리가 먼 팀이 됐다. 허수가 ‘캡스’ 라스무스 빈테르를 넘어서자 담원도 G2 e스포츠(유럽)를 뛰어넘었다. 허수가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되는 날, 담원도 세계 정상에 설 것이다.

담원의 2020시즌 마지막 경기가 어느덧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담원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쉬운 승리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쑤닝(중국)은 8강전에서도, 4강전에서도 언더도그였다. 그저 둘 중 더 게임을 좋아하고, 더 열심히 준비한 팀이 우승하길 바란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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