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부통령’ 역사 쓴 해리스… 차기 대선후보 부상

“내가 백악관으로 향하는 첫 번째 여성일 수 있지만, 마지막 여성은 아닐 것”
NYT “유색인종 시민들, 처음으로 자신이 미국 정치를 대표한다고 느껴”

7일(현지시간) 차기 미국 부통령에 당선되 카멀라 해리스가 승리 연설을 하기 위해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도착했다. AFP 연합뉴스

“해리스는 또 다른 장벽을 뚫고 나왔다.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흑인, 최초의 남아시아 출신 부통령 당선자가 됐다.”

미국 CNN방송은 7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의 부통령 당선을 보도하며 이같이 전했다. 박빙의 승부 끝에 조 바이든 후보가 대선 승리를 확정지으면서 러닝메이트인 해리스는 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민주당의 승리가 확정된 이날 밤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연설하면서 오래 전부터 어려운 길을 앞장서 나간 자신의 어머니와 모든 유색인종 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백악관으로 향하는 첫 번째 여성일 수 있지만, 마지막 여성은 아닐 것”이라면서 “미국이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모든 여자아이들이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NN은 “해리스는 정치 권력의 새 얼굴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간과돼 왔으며 역사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체계적으로 무시돼왔던 수백만명의 여성을 대변한다”면서 “이제 여성들은 미국 200여년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권력의 수혜자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해리스는 지난 8월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이후 바이든의 든든한 러닝메이트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식 지명 당시 바이든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두려움 모르는 전사이자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공직자 중 한 명인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부통령 후보에 오르기 전에도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는 저격수로 활약했다. 심지어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바이든이 인종차별주의적인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하자 해리스는 “당신은 그들과 손잡고 ‘버싱’(busing, 1970~80년대 흑백 학생들을 섞어 교육하려고 집에서 먼 학교까지 실어 나르던 정책)에 반대했는데, 당시 매일 그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소녀가 바로 나였다”고 말해 바이든의 입을 막았다.

이같은 능력은 이번 대선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도 빛났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맞붙은 해리스는 침착하고 정중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CNN방송은 “해리스는 훌륭한 부통령이 해야 할 일을 했다”면서 “냉정한 태도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맹비난했고, 펜스 부통령이 끼어들었을 때 활용한 ‘침묵과 응시’는 그 어떤 말보다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미 언론은 펜스 부통령이 발언에 끼어들 때마다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예의바르게 건넸던 “부통령님, 제가 발언하는 중입니다(Mr. Vice president, I’m speaking.)”라는 멘트에 주목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 토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자꾸 끼어들자 기분이 상한 바이든이 “자네 입 좀 다물어주겠나?(Will you shut up, man?)”라고 말한 것과 대조되는 탓이다.

포브스는 “해리스의 한 마디에 모든 여성들은 남성이 주로 이야기하던 직장 내 회의, 그리고 사적인 대화를 떠올렸을 것”이라면서 “그 경험은 (여성들에게) 사실상 보편적이며 2014년 조지워싱턴대 연구 결과 남성은 동성끼리 대화할 때보다 여성과 대화할 때 33% 가량 더 자주 끼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미국에서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으로서 다양한 커리어를 일궈왔다. ‘흑인들의 하버드’로 불리는 명문 하워드대에서 공부했고, 2011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됐다.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의 차기 부통령 당선을 확정지은 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의 코스트코 매장에서 한 시민이 TV로 중계되고 있는 해리스의 연설을 듣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럼에도 선거운동 기간 그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정치권의 일부 태도에 대해 미 언론들은 비판했다. 특히 공화당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인 해리스의 이름을 말하면서 조롱했던 일을 언론은 누차 꼬집었다.

퍼듀 의원은 지난달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면서 해리스의 이름을 언급했다. 퍼듀 의원은 “카-말라, 카-마-라, 카멀라 멀라 멀라”라고 수 차례 해리스의 이름을 부르다가 “난 모르겠다. 알게 뭐람”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 일은 ‘존중’ 문제로 귀결된다”면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발음하는 적절한 방법을 배우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을 때, 혹은 더 나쁘게 말하면 의도적으로 ‘그것을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조롱할 때 그것은 악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해리스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문제에 대해 “고위 선출직 지도자들이 어릴 때 놀이터에서 하던 행동을 한다면 그건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그만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성숙도를 반영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리스는 지난해 민주당 경선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성과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서 유색인종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유색인종) 중 일부는 자기 자신이 처음으로 미국 정치를 대표하는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전했다.

바이든이 78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에 취임하는만큼 부통령 자리는 더욱 무겁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건강 문제 또는 유고 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4년 후인 82세에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낮은만큼 56세인 해리스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이든 후보는 ‘해리스를 민주당의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면서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하기 전인 지난 3월 바이든은 자기 자신을 ‘전환기 후보’라고 지칭하면서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이 올라설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이런 언급은 바이든과 해리스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해리스가 바이든의 뒤를 이을 것이며, 미국의 첫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었다.

WP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국민을 위로하고, 혼란을 잠재우며, 국정을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 즉 대통령감을 부통령에 지명해야 한다”며 “해리스는 필요한 자격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했다.

럿거스대 미국 여성정치센터 소장 데비 월쉬는 “해리스의 업적은 후에 어떤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든간에 이미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더 분명한 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2009년 해리스가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 선거에 출마할 때 한 기자가 그녀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해리스는 그 때도 어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처음일 수 있다. 당신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하라.”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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