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터(통합자), 힐러(치유자)… 눈여겨볼 바이든 단어들

국내외 미국정치 전문가 5인 대선 평가
“일단 트럼프부터 낙마시키자” ‘반트럼프’가 승리
세력 확인된 ‘트럼피즘’ 관리에 공화당 운명 달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선거유세를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모습. 코로나19 확산 우려 속에 열린 당시 유세는 흥행참패로 끝났다. 지난 6월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

치열했던 미국 대선이 결국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국내외 미국정치 전문가들은 사상 최고의 투표율로 이룩한 바이든의 압승을 ‘반(反) 트럼프’ 연합의 승리로 분석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트럼피즘(트럼프에 대한 열광에 기반하는 정치, 혹은 트럼프 스타일의 정치)’이 하나의 분명한 정치 세력으로 미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로 점철됐다가 바이든으로 끝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비록 재선에 실패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 내내 주인공이었다. 우편투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지속적으로 대선불복 가능성을 내비쳤고,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정치에만 몰두하며 끊임없이 논란을 재생산했다. 그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트럼프’ 대 ‘반트럼프’가 선거를 지배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8일 이번 미 대선을 “‘반 트럼프’로 뭉친 광범위한 세력의 연합이 승리를 거둔 선거”라고 평가했다.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파시스트인 장 마리 르펜을 떨어뜨리기 위해 프랑스 좌파·중도 세력이 우파 후보였던 자크 시라크에 몰표를 던졌던 사례와 판박이라는 것이다. ‘반 르펜’ 연대 하에 시라크는 역대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안 교수는 “어떤 미국을 세울 것이냐가 아니라 일단은 트럼프부터 낙마시키자는 구호가 미국 유권자들에게 먹혀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학자이자 출판사 후마니타스 대표인 박상훈씨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승리 연설에서 바이든 당선인을 소개하며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인 ‘유나이터(uniter·통합자)’를 사용한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지적했다. 극단으로 쪼개진 미국 사회에서 본인은 ‘힐러(healer·치유자)’로서 다른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것을 부통령의 입을 통해 얘기했다는 해석이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한국사회 역시 촛불혁명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꿈꿨다”면서 “여야, 보수와 진보 구도를 넘어선 생산의 정치를 바랐지만 문재인정부 역시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공격하고 원천 배제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의 승리 연설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 용서라는 표현이 자주 나왔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피즘이라는 악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인 지지자들이 지난 8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위스콘신주 오시코시의 공항에서 연설을 할 때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바이든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트럼피즘의 실체는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많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7400만여 표를 얻은 바이든에 육박하는 7000만 표를 트럼프가 득표했다”며 “트럼피즘은 엄연한 미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트럼프라는 세 가지 정치 세력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4년 전 대선 당시 백인 저소득층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혜성처럼 등장한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를 전복시키고 당을 접수하면서 공화당의 분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당 요직이 트럼프 충성파로 채워지면서 공화당의 분열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의 분열상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상·하원 의원 선거가 함께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많은 표를 득표했다고 말했다. 지역구 선거와 달리 대선에서는 트럼프에게 표를 주지 않은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이 다수 있었다는 의미다.

공화당 내 트럼프 반대파 의원들도 바이든 당선이 거의 확정되자 바이든 캠프 측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의 당선을 인정하고 트럼프 이후의 공화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연방주의 반대, 적은 세금 등 트럼프가 내세운 정책적 어젠다에 동조하는 미국 유권자가 7000만명에 육박한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온 광적인 트럼프 지지층을 어떻게 다독여 제도권 정치 안에서 관리할 것인지가 공화당 내 온건보수 세력의 과제이자 미국 전체의 과제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트럼프가 미국의 보수를 대표할 수 없다’는 입장이 공화당 내에서 다시 자리를 잡을 것인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베이징 바이든’은 없다
지난해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진영은 선거 내내 바이든 당선인을 ‘베이징 바이든’이라 이름 붙이고 민주당을 친중 세력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실제 바이든 행정부가 친중 성향을 보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사람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對) 중국 문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 모두 강경하게 간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국 국민의 77%가 반중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강경하게 가야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면서 “대통령 바이든은 이 같은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 때리느냐의 문제지 반중 정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당선인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다자주의 복원만큼 강조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바이든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상회의 개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점을 거론하며 “중국은 참여할 수 없는 회의로 이를 토대로 국제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반중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구체적인 압박 방식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이고 난폭한 방식과는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도 강력한 반중 정책을 펼치겠지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한 다자주의적 방식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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