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10대 맞고 한번 할퀴면 쌍방폭행, 그게 대한민국” [인터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지난 7일 부산 북구 덕천동 덕천지하상가에서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논란이 됐다. 남성은 쓰러진 여자 얼굴을 휴대전화로 무차별 가격했고 이 장면은 지하상가 CCTV에 적나라하게 담겼다.

사건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한편에서는 남자가 잔인하게 여자를 때린 ‘데이트폭력’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다른 편에서는 여자도 때렸으니 ‘쌍방폭행’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영상을 보면 남녀가 모두 주먹을 휘두른 건 맞다. 하지만 물리력 차이가 압도적인데다 폭력 자체도 일방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해보였다. 지난 며칠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덕천지하상가 폭행은 남녀 모두가 가해자인 쌍방폭행인가, 친밀한 관계에서 약한 파트너를 향해 폭발한 특정 유형의 데이트폭력인 걸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이 양자가 동등하게 싸운 쌍방폭행으로 규정되는 것에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11일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쌍방폭행으로 인정될 수 있는 구조”라며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국내에 남편에게 맞는 아내, 애인에게 맞는 젊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뉴시스.

- 덕천지하상가 폭행이 쌍방폭행이라는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쌍방폭행이 몸집이 작은 사람에게, 특히 데이트폭력 사건에서는 여성에게 크게 불리하게 적용된다. (여성이) 10대 맞고 한번 손톱으로 할퀸 자국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도 경찰에 가면 쌍방폭행으로 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도) 쌍방으로 인정이 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다.”

(*양쪽이 싸운 경우 한쪽이 정당방위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도발하지 않고 상대가 멈춘 뒤에는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하며 위험한 물건을 쓰거나 상대보다 더 큰 폭력을 행사하면 안된다.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연인 간 폭력이 일어났을 때 힘이 약해 일방적으로 맞은 여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 사회적으로 데이트폭력 문제는 심각한데 사법기관에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것 같다

“데이트폭력은 죄명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남녀 파트너 사이에서 일어난 폭행도 단순 폭행의 기준을 적용한다. 특히 파트너 폭력(Partner Violence)은 보호해야 하는 상대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피해자를 보호해주는 정책이 국내에는 일반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그냥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하다 보니 (데이트폭력처럼 일방적인 폭행이) 대등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으로 취급되는 거다. 그러니까 (쌍방폭행이란)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반영된 죄명이 전혀 아니다.”

(*경찰청의 ‘2015년 이후 여성 대상 폭행·살인 사건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으로 계속 증가세다. 형사입건 건수도 2017년 1만303명, 2018년 1만245명, 2019년 9858명으로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 정책적으로나 법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나

“당연하다. 바뀌어야 한다. (사법기관은) 여성 안전을 위해서 파트너 폭행은 현재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취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단 파트너 폭력을 범죄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도 그런 것 아니냐. 우리나라는 가정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안 본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에 따라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면 그때부터는 피해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반의사불벌죄가 있다는 얘기는 피해자에게 ‘당신 남자니까 봐줘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혼인신고가 돼 있으면 가정폭력, 혼인신고가 안 돼 있으면 데이트폭력인 거다. 일단 기본적인 모듈(요소) 자체가 남녀 간 폭력은 범죄 취급을 안 하는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데이트폭력인 것이다.”

- 데이트폭력을 범죄로 보고 있지 않은 거다?

“그냥 ‘연인 간 다툼’ 정도로 보는 거다. 사랑싸움으로. 그만큼 여성이 폭력 피해를 보는 걸 가볍게 생각한다는 거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생명권을 남성의 생명권만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가 가해자의 행위를 가볍게 만드는 단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어가 바뀐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단어가 바뀐다고 단순폭행죄로 처리하자? 단순폭행죄는 합의하면 끝나는 거 아니냐. 그러니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든, 일반 폭행죄를 적용하든 어쨌든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이건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여자들이 신체적으로 열세인 것, 그러므로 (법률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그런 개념이 없다. 전부 당사자주의, 당사자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여성의 인권을 동급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보호도 안 해준다.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는 약자 보호의 원칙이나 피해자 보호의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다. ‘조두순의 인권만 중요하다’며 피해자는 이사가는 상황이지 않나. 스토킹 방지법도 아직 통과가 안됐다. 스토킹 행위에 대해서 제재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헤어진 연인들 사이에서의 스토킹 행위라도 제재를 해달라는 거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 쫓아다니는 행위 같은 것을 사전에 제재하면 데이트폭력으로 심각해지기 전에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그래도 통과가 안된다.”

(*역대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 관련 법안은 모두 20건 발의됐다. 15대 국회부터 18대 국회까지 1~2건씩 발의된 데 이어 19대 3건, 20대 국회에서는 6건이 제안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지난 6월 경남 창원시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시작으로 총 6건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송다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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