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워싱턴] “증거가 없다”…패색 짙어가는 트럼프 법정싸움

소송 제기하며 “어떤 사람한테 그런 얘기 들었다”
사실 관계도 오인…부정선거 소송 줄줄이 ‘기각’
“소송으로 대선 결과 뒤집기 어렵다” 분석
트럼프 측 결사항전…줄리아니 전 시장 내세워

미국 공화당의 한 여성 참관인(오른쪽)이 대선 다음 날인 4일(현지시간) 아침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한 개표소에서 개표직원들이 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법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이 몽고메리 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이 진행됐다. 트럼프 선거캠프는 “부정선거 의혹이 있는 592표가 있다”면서 몽고메리 선관위에 우편투표 무효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판사는 트럼프 측 변호인에게 “당신은 592표가 부정선거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트럼프 측 변호인은 “현재까지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방금 개표를 마쳤다”고 답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도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자인한 모양새가 됐다. 펜실베이니아주 법원은 13일 트럼프 측의 소송을 기각했다.

미시간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미시간주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지난 4일 개표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선관위 개표직원들이 우편투표가 도착한 날짜를 고친다는 것이 트럼프 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소장(訴狀)에 그 근거로 “한 여성 참관인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

판사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 전부냐”고 추궁했다. 증거 부족으로 트럼프 측이 제기한 이 소송도 기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부정선거 증거 없고, 사실 관계 잘못 알고

트럼프 대통령은 법적 소송을 통해 빼앗긴 승리를 되찾겠다는 각오로 무차별적인 소송전을 제기했다. 광범위하게 자행된 부정선거와 개표 조작을 밝혀내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실낱 같은 기대는 산산조각이 날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측이 제기한 대선 불복·부정선거 소송이 연패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이 꼽은 가장 큰 패인은 부정선거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연일 부정선거 주장을 펼치면서도 관련 사진 한 장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관계를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트럼프 측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선관위를 제기로 낸 소송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측은 소장에서 “선거 참관인들은 선거담당 직원들이 많은 사전투표의 유권자 생년월일을 ‘1900년 1월 1일’로 기입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86만 7000표 이상을 무효표로 해야한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120살의 가짜 유권자들이 대거 나왔다는 의혹은 여기서 출발했다. 트럼프 측이 지금까지 내놓은 여러 주장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미시간주 선거담당국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선거 관련 임무를 맡았다가 2017년 퇴직한 크리스 토머스의 증언이 판을 바꿔놓았다.

토머스는 “선거담당 직원들이 사전투표 용지와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년월일을 당장 확인하기 힘든 유권자의 경우 임시적으로 ‘1900년 1월 1일’이라는 생년월일을 컴퓨터에 입력한다”고 설명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미시간주 법원은 “원고의 주장은 정확하지 않고, 신뢰하기도 힘들다”면서 트럼프 측의 소송을 기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건물 앞에서 대선 불복과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측 ‘연패’…뒤집기 더 어려워졌다

특히 13일엔 트럼프 측이 9개의 소송에서 전패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에 냈던 7개 소송은 기각 당하거나 패소했다. 미시간주에서 개표 확인을 중단해달라는 소송도 기각 당했다.

애리조나주에선 수검표로 재검표를 해야 한다는 소송을 스스로 취하했다. 수검표로 해봤자 바이든 당선인과의 표차를 역전시킬 가능성이 없어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시도로 분석됐다.

NYT는 “13일을 거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으로 대선 결과를 뒤집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초반 연패는 트럼프 측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측의 주장을 기각한 법원들의 판례를 다른 주에서도 참고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이 보수화됐지만, 대선 불복 재판에는 거리를 둘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재검표를 통한 역전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NYT는 “수백 표 차이는 재검표를 통해 뒤집는 행운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표차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조지아주는 13일부터 재검표에 들어갔다. 조지아주에선 바이든 당선인이 면도날 차이인 0.3% 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조지아주법은 0.5% 포인트 차이면 재검표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득표율 차가 0.3% 포인트라고 해도 실제 잠정 득표차는 1만 4172표다. 대반전이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지난 7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법적 소송을 강력히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사방에 위기신호…트럼프 측, 그래도 끝까지 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측에 악재는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측의 소송을 맡았던 2개 로펌이 소송에서 발을 뺀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트럼프 측의 소송을 맡았던 로펌 ‘포터 라이트 모리스 앤드 아서’는 지난 12일 법원에 수임 철회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0일엔 애리조나주에 있는 로펌 ‘스넬 앤 윌머’가 트럼프 측의 소송 대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캠프는 “좌파 폭도들이 변호사들을 굴복시켰다”고 주장했다. ‘반(反) 트럼프’ 성향의 단체들은 로펌들이 트럼프 측의 소송을 맡을 경우 이들 로펌의 고객 회사들에게 해당 로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압박할 방침이다.

그러나 트럼프 진영은 결사항전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불복 소송을 이끌 책임자로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기용했다고 ABC방송이 보도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중 대표적인 대선 불복파 인사다. NYT는 줄리아니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법적 소송을 부추기면서 소송을 통해 대선 승자가 뒤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줄리아니가 선장을 맡은 트럼프 진영의 법률팀이 연패를 끊고 대역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트럼프 측이 소송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승리 가능성보다는 소송 외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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