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입주민 갑질’에 공분, 그사이 피해자 챙긴 이들

한 네티즌이 갑질 피해 경비원에게 간식을 선물한 뒤 공개한 영수증(왼쪽). 오른쪽은 경비원에게 음료를 가져다 준 유튜버 김태현씨. 보배드림, 유튜브 '김태현'

“알아서 빼 가, XX들이. 일 XXX 하고 있어.”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의 한 아파트에 듣기 거북한 욕설이 울려 퍼졌습니다. 주인공은 20대 입주민인 A씨. 욕설을 들은 건 이 아파트 경비원인 B씨입니다. A씨는 B씨가 먼저 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녹취파일에 담긴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B씨는 존댓말로 A씨와 대화했고, A씨는 거친 말투로 막말을 했죠.

이들의 갈등은 주차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A씨가 반복적으로 보행자 통로에 차를 대면서 민원이 심해졌고, 이에 경고 스티커를 붙이자 A씨가 갑질을 했다는 게 B씨 주장입니다. SBS가 공개한 영상에는 A씨가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를 자신의 외제차로 막아둔 모습도 담겨 있었습니다. A씨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한 경비원은 총 4명. B씨는 “유모차 하나가 못 지나갈 정도로 주차가 돼 있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근데 A씨가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며 “그만둘까 하고 집에 가서 계속 울었다”고 했습니다.

B씨도 A씨와 같은 20대입니다. 20대 청년의 눈물에 많은 네티즌이 분노했습니다. A씨의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B씨의 사연에 마음이 아프다는 사람도 있었죠.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이 사건과 관련한 게시물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A씨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입주민 A씨가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를 자신의 차량으로 막아둔 장면. SBS

이렇게 분노에 휩싸인 게시물이 쏟아지던 때. 조금 다른 시선으로, 조금 더 따뜻하게 이 사건을 바라본 네티즌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그 아파트에 산다는 이 네티즌은 A씨를 향해 화를 내는 대신 상처받았을 B씨에게 시선을 돌렸죠. 그는 17일, 6만원어치의 간식을 사서 경비원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안타깝고 화가 나는데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힘내시라고 인사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너무 상처받지 않으시면 좋겠다”며 글을 마무리했죠.

이 네티즌의 글에는 “같이 사는 세상. 참 잘하셨다” “관심과 배려 멋지십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들 B씨를 세심히 챙긴 그의 마음에 감동했다는 반응을 보였죠. “살맛 나는 세상”이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 네티즌처럼 경비원에게 응원을 전한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한 유튜버인데요. 이 유튜버는 공교롭게도 A씨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데다 같은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 ‘뉴스 속 갑질 입주민’이라는 오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급히 영상을 올려 자신은 A씨가 아니라고 해명했는데, 이 영상의 말미에 뜻밖의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구입해 경비실을 방문한 겁니다. 본인도 오해를 받아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자신보다 더 심경이 복잡할 경비원들을 위해 응원의 말을 전하고 온 거죠.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고통받는 경비원들의 소식에 분노하고 함께 싸우고 온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지만, 그래서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다는 생각에 새삼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위안보다는 상처받는 이들이 더는 없으면 좋겠습니다. 날은 자꾸 추워지는데 모두 온기 넘치는 겨울을 보낼 수는 없는 걸까요. B씨가 일터에서 아프지 않길, 눈물을 멈추고 웃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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