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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자기 주장을 못하는 아이

공감 능력,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의해 좌우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늘 손해를 보고 당하면서도 자기 주장을 못하고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부모는 이제까지 아이에게 가르쳐온 ‘착한 것이 좋은 것’ ‘양보와 배려가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게 옳기만 한 것일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K는 순하고 착한 편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놀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친구가 달라고 하면 양보하고, 자신이 꼭 필요한 크레파스가 있어도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면 주어 버린다. “너도 노란색이 있잖아. 네 것으로 칠해. 나도 노란색 많이 써야 해”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지나치게 착한 것인지 늘 양보를 해 버렸다.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급식을 할 때도 맛있는 반찬을 빼앗기고, 읽고 있던 책도 빼앗기기 일쑤다.

“남의 반찬을 먹을 때는 미리 말하고 가져가야지. 나도 막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읽던 책이니까 마저 읽고 줄게” 라고 분명하게 말하라고 일러두지만, 내심 아이가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러면서 착한 우리 아이가 이 험난한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한숨을 내쉰다. 사회생활을 할 때 순하고 착한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부모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성은 바람직한 순간보다 다소 난감한 상황일 때 빛을 발하게 된다. 사회 구성원 간의 만남을 보면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이심전심, 찰떡궁합 같은 관계도 있지만 만났다 하면 으르렁대는 견원지간도 있다. 사회성이 발휘되는 순간은 바로 나와 입장 차이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다.

사회성이란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외향성’ 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 각기 다른 성격이나 기질, 입장, 욕구의 충돌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이나 마찰에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는지가 관건이다. 즉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서로 조율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욕구를 무조건 버리기보다 상대방과의 타협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성취를 이뤄낼 줄 아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성에서 필요한 최고의 덕목은 대인관계 기술이며, 여기서 중요한 능력이 상대방의 입장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거다. 나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소통 능력까지 갖췄을 때 사회성의 높은 단계를 이를 수 있다. 남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부모가 아이를 공감하고 감정을 읽어주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 갈 수 있으며 공감 능력도 발달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 간의 갈등으로 늘 불안감에 싸여 있던 아이나 지나친 간섭, 과잉보호로 의존적인 아이들은 인간관계에서 두려움이 많아 자기 주장을 못하기도 한다.

남의 반찬을 허락 없이 가져다 먹는 아이, 남의 읽던 책을 그냥 빼앗아 가는 아이도 물론 사회성의 기본인 ‘사회 규범 습득’이 안되어 있는 아이다. 하지만 사회성 발달 수준이 아직은 천차만별인 시기라 이런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단체생활의 숙명이기도 한다.

이럴 때 적당하게 자기 주장을 못한다면 이 또한 사회성이 부족한 거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갈등을 피하라고 가르쳤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싸우는 건 절대 안 되는 일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주었을 수 있다. ‘친구가 밉다’고 하거나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했을 때 “그런 생각하면 나쁜 어린이야” “그런 말 하면 혼난다. 나쁜 말 쓰면 안돼” “그런 마음씨 가지면 벌 받는다” 라고 아이의 욕구나 감정 표현을 억압한 건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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