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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력시장 개방 안 하면 에너지 전환 걸림돌” IEA의 경고

8년 만에 나온 에너지정책 국가보고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한국의 전력시장 개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전기사용량이 해마다 증가세인데도 전기요금을 정부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인위적으로 조절해 전력사업자들의 막대한 손실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한국의 ‘그린 뉴딜’과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IEA는 26일 한국에 대한 에너지 정책 국가보고서를 공개했다. IEA는 1974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석유공급 등 에너지 위기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국제기구로, 한국을 비롯해 30개국이 가입돼 있다. IEA 에너지 정책 국가보고서는 회원국의 에너지 정책을 평가하고 정책 조언을 담은 것으로 에너지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보고서로 꼽힌다. 한국에 대해 국가보고서가 나온 것은 2006년, 2012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IEA는 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20%, 2040년 30~35%로 확대하는 동시에 석탄과 원전 발전은 감축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에너지전환 정책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에 대해서도 “에너지 전환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의미한다”고 치켜세웠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나온 한국의 2000~2018년까지 에너지 생산 비중. 노란색 부분이 원자력에너지. (사진=IEA 보고서 캡처)


그러나 동시에 2018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IEA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IEA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생산 가운데 원전 비중이 77%로 가장 높았다. 반면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4%에 불과했다.

IEA는 “가변성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 공급의) 시스템 안정성과 공급 적합성이 항상 확보돼야 할 필요가 커질 것”이라며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활발한 소비자 참여를 장려하고 지역사회와도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IEA는 특히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에 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IEA는 “단일구매자(한국전력)로 구성된 전력부문은 현재 단일 구매자로 구성된 ‘의무적 풀(mandatory pool)’로써 운영되며 도·소매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결정한다”며 “전력 부문을 개방해 전체 가치사슬에서 진정한 경쟁과 독립적 규제기관을 도입하지 못한 점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한전만이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구조가 다른 발전사나 민간 전력생산자의 손실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정부가 전력판매시장 민영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전기요금 상승 등의 우려로 흐지부지됐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생산 단가가 높아진 전기를 한전이 사들여서 싸게 팔다 보면 한전의 적자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현세대는 값싼 전기를 쓰지만, 그 피해는 결국 다음 세대에게 전가된다”고 경고했다.

IEA는 또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있는 전기위원회에 대해서도 “자문을 제공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전기위원회 지위를 전력산업 규제기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IEA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추후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 권고 내용을 충실히 활용하겠지만 당장 IEA 권고대로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유세 도입’ 제안…원전 입장은 8년 전과 미묘하게 달라져

IEA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경유세’ 도입도 제안했다. IEA는 “한국의 대중교통 사용 비중은 정체된 반면, 개인 이동수단 비중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한국 정부가 수송용 연료와 관련된 합리적 과세 제도를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경유세 인상’을 촉구한 것이다. 경유세는 현재 휘발유 가격의 85% 수준인 경유에 세금을 더 붙여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유도하자는 취지이지만, 운수업계나 경유차 운전자의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도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경유세 인상안 제안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날 IEA 보고서는 ‘원전’과 관련해서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IEA는 2012년 보고서에서는 “한국이 다른 에너지원에 대한 대안이 많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원전 확대가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으로 다른 국가에 훌륭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원전 확대를 장려했다. 하지만 이날 보고서에서는 이런 표현은 싹 빠진 채 “한국 정부가 원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으며, 이번 세기 마지막 분기 중 탈원전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만 했다. 또 원전해체산업 육성과 방사능폐기장 주변 지역 주민에 대한 충분한 설명 등을 주문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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