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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150만마리 안락사…미국의 동물 홀로코스트 [개st상식]

집단 수용소에 내몰린 나치 치하의 유대인(왼쪽)과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기다리는 유기동물(오른쪽) 모습. 출처: dw, peta

보호소에 남겨진 유기동물들은 안락사라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어느 나라든 공립보호소에서 구조된 유기동물은 10일 정도 공고기간을 가지며 이때 입양자를 만나지 못할 경우 진정제와 심정지약 주사를 맞고 5분 안에 숨을 거둡니다. 이렇게 안락사 조치된 유기동물이 지난해 한국에서는 3만 마리에 이릅니다.

세계 최대의 안락사 국가는 미국입니다. 통계가 집계되기 이전인 1970년대에는 연간 살처분 건수가 1000만 마리로 추산됩니다. 2009년에도 260만 마리에 달했지만 이후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2010년 기준 150만건으로 줄었습니다. 100만건 이상 감소했지만 여전히 끔찍한 수치죠.

여전히 진행 중인 미국의 유기동물 홀로코스트, 그 내막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의 인구 1000명당 안락사 당한 동물 숫자. 1970년대 이후로 급격히 감소했지만 여전히 연간 150만 마리로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출처: 미 Psychology Today

가스실, 익사…매년 1300만 마리 죽였다

1970년대 이전 미국의 동물보호소는 도살장과 다름없었습니다. 세계적인 동물구조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HSI)는 “1970년 이전까지 연평균 135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안락사당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 당시에는 치사율 높은 광견병을 예방해야 했다. 잔인한 조치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보호소의 동물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살처분당했습니다. 뉴욕시는 유기견들을 잔인하게 익사시켰고, 필라델피아에선 생포한 동물들을 몽둥이로 가격해 죽였다는 보고서도 있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인도적인 절차가 미 연방 차원에서 마련된 것은 1990년 이후의 일입니다.

미국 댈러스의 공립 보호소 직원이 유기동물을 포획한 모습. 출처: NYT

안락사, 연 1000만→200만 마리로 줄어든 비결

미국의 안락사 건수는 급격히 줄어들더니 2000년 들어 약 200만 마리가 됩니다. 1000만마리씩 처분하던 1970년대와 비교하면 80% 가까이 줄어들었죠. 로스앤젤레스(LA) 보호소에선 안락사가 하루 300건에서 10건으로 97%나 줄었습니다.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공립 동물보호소의 안락사 통계. 80%가까이 차지하던 안락사 비율이 20%대로 떨어졌다. 대신 입양 및 중성화 이후 제자리 방사(TNR) 비율이 늘었다. 출처: NYT

미국 사회에서 안락사 비율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비결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요인은 중성화 시술입니다. 반려동물 등록 시 중성화 시술이 의무화되면서 1970년대 40% 이하였던 중성화 비율이 2017년 99%에 달했죠. 그 결과 보호소에 들어오는 유기동물 숫자가 70%나 줄어듭니다.

전문가들은 시민의식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분석합니다. 1970년대 이후 수많은 동물구조단체가 생기고 대규모 동물보호운동이 활발해집니다.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만들어 노킬(No Kill)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처드 아반지노는 “동물은 네 발 달린 가족”이라며 “오늘날에는 누구도 보호 공간도 좁은데 안락사를 집행하자는 말을 쉽게 못한다”고 말하죠.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기동물 입양이 활발해집니다. 전체 반려동물 중 보호소에서 데려온 비율이 2006년 15%에서 2016년 35%까지 치솟았죠. 2012년까지 유기동물 70%를 안락사하던 오스틴 동물보호소의 입양률은 작년 기준 98%입니다.

반려견이 안락사 조치받은 뒤 슬퍼하는 가족들 모습. 출처: petapixel

쏟아지는 유기동물…동물보호소의 고충

안락사를 집행하는 동물보호소 직원들의 심적 고통도 큽니다. 공립 동물보호소들은 신고된 동물을 반드시 구조해야 하는 무조건 수용(open admission) 의무가 있는데요. 구조 요청이 몰려오면 기존 동물을 안락사시켜 빈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고기간 내에 입양처를 찾지 못한 유기동물들은 안락사 대상이 된다. 대상 동물에게는 고통을 덜어주는 진정제와 심장을 정지시키는 근육 이완제가 차례대로 주입되며, 주사를 마치고 숨이 멎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출처: NYT

보호소에는 늘상 대량 구조요청이 들어옵니다. 뉴욕시 동물보호소 소장 리사 웨인스톡은 “토끼 176마리를 구해 달라는 황당한 신고도 있었다. 우리는 이 토끼들을 모두 구조했고, 입양 보내는 것도 우리 몫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도덕적 비난이 두려워 안락사 집행 건수를 축소해 발표하는 보호소도 있습니다. HSI의 동물보호소 총괄책임자 인가 프리케는 “집행 건수를 밝히라는 입장을 지지하지만 많은 보호소 처지에서는 불가능한 요구”라고 지적합니다. 안락사 건수가 많으면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프리케는 “보호소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락사 집행 건수만 보고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는 담당한 보호소에 수의사와 행동 전문가를 고용해서 안락사를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입니다.

유기동물 홀로코스트, 외면할 수 없는 이유

버려진 동물의 삶은 비참합니다. 집단 보호소로 보내지고 죽임을 당하는 그 모습은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던 유대인, 집시들과 닮았습니다.

나치 치하의 유대인들이 유럽 전역에서 색출당한 뒤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모습. 출처: 독일 dw

포획된 유기견들을 수용한 공립보호소의 견사. 출처: Harris county animal shelter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생사가 정해지지 않은 비참한 생명들을 가리켜 ‘호모 사케르’(버려진 생명들)라고 불렀습니다. 호모 사케르는 파괴된 인간성의 증거입니다. 호모 사케르가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에든 존재하며 문명사회라면 그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죠.

어느새 우리는 매년 수만, 수십만 마리씩 죽어가는 무서운 이야기에 무감각해졌습니다. 유기동물을 현대 사회의 호모 사케르라고 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그들의 죽음을 가엾이 여기는 일은 어쩌면 우리의 다음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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