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소나기] 지옥 같던 데이트폭력… ‘생존자’ 정현씨 이야기

4화-벼랑 끝 내몰린 시간, 그녀의 탈출기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정현(가명)씨의 손목에는 옅은 흉터가 있다. 몇 년 전 사랑했던 그놈이 남겼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소한 오해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그는 끝내 흉기를 들었다. 그다음 날에도, 이틀 뒤에도 그는 자주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정현씨는 무리한 탈출 대신 생존을 택했다. 안전하게 이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의 ‘헌신적인 여자친구’로 지냈다. 그동안 정현씨의 내면은 죽어갔다. 몸도, 마음도 지친 정현씨가 ‘내가 나를 해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때쯤 그 고통이 끝났다.

지난 24일 마주한 정현씨는 인터뷰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마스크를 벗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철저히 익명으로 존재해야 했다. 이름, 얼굴은 물론이고 각 사건의 정확한 시기조차 밝힐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그놈의 주의를 끌게 될지도 모른다. 정현씨는 익명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아직 두렵다”고 했다.

‘혼자’가 되자 폭력이 시작됐다

그는 교제 초반까지만 해도 조금 말이 많고, 조금 고집이 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술자리를 유난히 좋아했지만 정현씨는 그저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연애 경험이 얼마 없었던 탓에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 걸까. 일행이 싸움에 휘말려 같이 경찰서에 왔다는 그놈의 말을 정현씨는 매번 믿었다. 그가 ‘눈을 마주쳐서’ 등의 별것 아닌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고 술병을 던지곤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정현씨는 휴학하고 한국에 온 유학생이었다. 정현씨가 학교로 돌아갈 때, 그놈이 따라왔다. 그는 자신이 관심 있던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유난히 대화가 잘 통했던 남자친구의 동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출국길. 긴 비행시간을 거쳐 그곳 공항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그가 본색을 드러냈다. 정현씨의 작은 장난에도 분노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정현씨는 “제가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성공하겠다던 그놈은 점차 정현씨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살 곳을 구할 때까지만 정현씨 집의 빈방에서 지내겠다더니 아예 눌러앉았다. 정현씨는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며 학업까지 해내야 했다. 그래도 이런 고단한 일상은 그놈의 이상한 행동에 비하면 견딜 만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스스로를 때렸다. 흉기를 들고 죽겠다고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접시, TV, 창문…. 그놈 탓에 멀쩡한 게 없었다. 정현씨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집에서 나가 달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는 극도로 분노했다.

잠적 그리고 탈출

약 1년. 그놈에게서 벗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는 그사이 분노의 화살을 정현씨에게로 돌렸다. “순서가 그렇더라고요. 남과 싸우다가, 자해하다가, 나중에는 저한테까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목을 졸렸다. 흉기에 작은 상처가 나기도 했다. 경찰에 도움을 청한 적도 있지만, 심각한 상해를 입힌 게 아닌 이상 외국인이라서 도와줄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 사람이 제 학교, 일터, 지인까지 모두 아는데 도망칠 곳이 없었어요. 섣불리 움직였다가 더 큰 일이 날까 봐 두려웠고요. 일단은 숙이고 들어가자는 생각뿐이었죠.”

정현씨는 그놈에게 모든 것을 맞췄다. 덕분에 폭력은 더이상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소한 것에도 심한 화를 냈다. 그 빈도는 점점 잦아졌다. 정현씨는 “부모님이 학비만 도와주고 계셨는데, 더 지체하면 동생의 학비까지 겹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학업만은 꼭 끝내고 싶어서 버티고 버텼던 것”이라며 “하지만 제가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갔고,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뒤에야 주변에 사정을 알릴 용기가 났다. 다행히 교수, 학우들, 상담사까지 나서 학교에 정현씨의 상황을 말해줬고, 정현씨 역시 각종 진단서와 사유서를 제출하며 졸업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마침내 학교 측에서 남은 기간을 온라인 수업으로 들어도 된다고 허락하자마자 정현씨는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왔다. 그놈이 부모님 집을 알고 있었던 터라, 자취방을 구한 뒤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외출할 때는 얼굴을 최대한 가렸고, 모든 연락 수단을 차단했다. 정현씨는 스스로를 완벽히 지운 뒤에야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부끄럽지 않아”

정현씨는 “비로소 안전해졌다고 느낀 때가 언제냐”고 묻자 “그 사람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고 지인이 말해줬을 때”라고 답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락하던 그놈이 잠잠해지자 조금씩 숨통이 트였고, 새 연인이 생겼다는 소식에 크게 안도했다.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밀려왔다. 누군가는 위험에 빠졌는데 자신은 해방감을 느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 여성에게 경고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눈치채는 일은 피해야 했다. 정현씨는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여성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놈이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도망치라고.

“학교에서 듣던 심리학 수업을 계속 곱씹었어요.” 정현씨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한 과정에 관해 설명하다 꺼낸 말이다. 다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던 그 시간을 정현씨는 늘 떠올렸다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중에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노출됐던 이들이 있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한마음으로 외치던 그 시간을 되짚으며 정현씨는 서서히 치유됐다.

“제 상처에 대해 말하는 습관을 들이려 했어요. 한번 말하니까 조금 괜찮아지고, 두 번 말하니까 조금 더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렇게 덤덤해졌죠. 현재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주변에 말해야 해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리세요. 내가 연락이 안 될 때 단 한 사람이라도 걱정하고 달려올 수 있도록요.”

가끔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정현씨를 탓할 때도 있었다. “왜 못 도망쳤어?”라는 배려 없는 말은 정현씨의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러면 정현씨는 “넌 어떻게 했을 건데?”라고 되물었다. 상대가 “난 바로 헤어지지”라고 하면 “그럼 쫓아올 텐데”라고 답하고, “그럼 신고하지”라고 하면 “신고해도 해주는 게 없을 텐데”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어떡하지’라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정현씨는 “그 기억을 극복했을 뿐, 그 사람을 극복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 사람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직도 그 얼굴이 생생해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매섭게 노려보는 그 얼굴이.”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버릇처럼 “너는 비혼주의자야”라고 말한다. 그렇게 다짐해야 새로운 사랑이 와도 현명한 판단을 할 것 같아서다. “안심했다가 그 사람처럼 나중에 본 모습이 드러나면 그땐 또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 너무 막막해요.”

정현씨는 이런 두려움에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최근 지인이 비슷한 피해를 겪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며 “제 사례를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처럼, 어디에선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가 있다면 외로워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혼자 앓아서 절대 득 될 게 없잖아요. 아픔을 나누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이 가해자인지 모를 거예요. ‘화나면 화낼 수 있는 거 아니야?’ 혹은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분노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본인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길 바라요.”

▶지난 기사: “젊은 날의 영정을 찍습니다” 스물 넷 ‘시한부’ 사진가

[소나기] 소한, 와 당신의 이야. 거센 비바람에 지쳤을 때, 잠시 쉴 곳이 필요할 때 들러주세요. 당신과 꼭 닮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다독여 줄 거예요.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