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영웅’ 줄리아니는 어쩌다 괴물이 됐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공화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검은 땀'을 흘리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공화당 당사 기자회견. 열변을 토하는 나이 든 남성의 두 뺨 위로 정체불명의 검은색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불복 소송을 총괄하고 있는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76)였다. 염색약이 땀과 함께 녹아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뒤늦게야 알아차린 줄리아니는 손수건을 꺼내 뺨을 훔치고는 “부정선거는 진짜다. 지어낸 게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리로 가는 확실한 길이 될 것”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날 기자회견은 온갖 음모론으로 점철됐다. 우편투표 조작 주장이 반복됐고, 베네수엘라·쿠바·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그 어떠한 구체적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 사상 가장 미친 기자회견이었다”고 혹평했다. 보수 매체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이자 트럼프의 측근 인사인 터커 칼슨조차 “이제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조롱거리로 전락한 줄리아니와 함께 트럼프의 대선불복 소송도 꼬여가고 있다.

뉴욕의 영웅
2001년 9.11 테러 때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하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당시 뉴욕시장(가운데). 그의 오른 편에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후보가 보인다.

루디 줄리아니는 과거 당적을 초월해 ‘뉴욕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1980년대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 소속 연방검사로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 지휘하며 첫 명성을 얻었다. 그 자신이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를 소탕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이때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1993년 뉴욕시장에 출마해 당선에 성공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이뤄낸 성과였다. 시장이 된 후 줄리아니는 뉴욕의 치안을 크게 안정시켰다. 낙서,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환경을 정비하고 치안을 강화해 성과를 거뒀다. 줄리아니 임기 동안 뉴욕의 범죄율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1년은 줄리아니 경력의 정점이었다. 9·11 테러라는 사상초유의 위기가 발생했지만 단호하고 용기있는 대응으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전립선암 투병 중이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으로 나가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모범을 보였다. 뉴욕의 시장에서 ‘미국의 시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그해 10월 유엔 연사로 초청된 자리에서 “뉴욕 시민들은 강하고 회복력이 있다. 우리는 단합돼 있고 테러에 무릎 꿇지 않는다. 공포가 우리 결정을 좌지우지하게끔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 속에 살기를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테러 발생 6주 후 뉴욕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79%에 달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해 말 줄리아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9·11이라는 굴레 그리고 트럼프
루디 줄리아니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때 치유와 재건의 상징으로 불렸던 줄리아니였지만 영광의 기억은 역설적으로 그를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그는 2008년 대선에서는 직접 선수로 뛰기로 결심하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고(故)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에 밀려 조기 사퇴했다. 그가 확보한 대의원은 단 1명이었다.

경선 실패는 줄리아니에게 360만달러라는 막대한 빚을 남겼다. 하지만 빚보다 뼈아픈 건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유권자들의 관심사는 이제 더 이상 테러와 안보가 아닌 경제였지만 그는 9·11 망령에 사로잡혀 이를 외면했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줄리아니를 겨냥해 “그가 한 문장 안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세 가지 뿐이다. 명사, 동사, 그리고 9·11”이라고 비꼬았다. 과거에 얽매인 구닥다리 정치인 이미지를 갖게된 것이다. 줄리아니는 이때의 모욕감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주류가 트럼프를 무시하며 외면할 때 줄리아니는 유력인사 중 누구보다 발빠르게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와 정치 성향이 같지는 않았지만 뉴욕 연고를 바탕으로 서로의 이권을 챙겨주는 등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유도시 뉴욕의 공화당 중도파 시장이 대안우파 진영의 투견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당시 줄리아니는 인종주의, 세금탈루 등 온갖 트럼프의 결함들을 지워주고 편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자신이 저지른 성폭행을 과시하는 트럼프의 음성 녹취록이 폭로됐을 때조차 가장 앞장서 변호했다. 트럼프 캠프의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은 줄리아니를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묘사하며 “우리가 승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줄리아니가 매일 24시간 내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WP는 “줄리아니는 과거 자신에 대한 과대광고에 영원히 인질로 붙잡혀 사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미국의 시장이라고 믿으며 애국주의 신화 속에 사는 남자와 ‘법과 질서’를 주창하는 트럼프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끝 모를 추락
머리 위 땀을 닦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트럼프 취임 후 첫 국무장관으로 거론됐지만 줄리아니는 입각하지 않고 그림자로 남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라는 이름 아래 미국 외교의 ‘비선 실세’로 활동하며 대외정책을 주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내몰았던 ‘우크라이나 스캔들’ 정국 때는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 주자였던 바이든을 흠집내기 위해 그가 부통령이던 시절 차남 헌터 바이든이 다니던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부리스마에 대한 부패 수사를 무마시켰다는 의혹을 재수사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했다. 군사지원 중단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측을 위협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외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줄리아니에게 쏟아졌다. 무리한 전횡으로 트럼프의 방어막에서 약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줄리아니가 이번 대선불복 소송 수임료로 하루 2만달러(약 2200만원)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워싱턴과 뉴욕의 변호사 최고 수임료가 하루 1만5000달러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금액이다.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줄리아니가 승산이 없는 것을 알고도 소송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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