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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볼lab] “내 마음 돌려줘” 프로듀스 ‘100원 배상’ 도전해봤다


“프로듀스 101 제작진들은 문자투표비 100원을 보상하라.”

최근 기사를 통해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에 대한 2심 재판에서 ‘투표 참여자에게 문자투표 비용 100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방송 문자투표에 참여했던 시청자 박모씨가 안준영 PD, 김용범 CP, 보조PD 이모씨에게 신청한 배상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기사를 본 순간, 2018년 8월 31일 그날 밤이 떠올랐다.

고작100원? 내 마음 돌려줘

“국민 프로듀서님,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마법 같은 말이었다. 프로그램 내내 가슴 뛰는 그 말에 넘어가 프로듀스48 공식사이트에 들어가 투표를 하곤 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 프로듀스 101 시즌3인 ‘프로듀스48’ 마지막 생방송 날. 나는 한표를 행사했다. 내가 한표를 찍으면 응원하던 일본 NMB48 소속 연습생 시로마 미루가 가수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종회를 보며 유료 문자 투표를 했다. 아니지. 한표로는 안될 일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그때 나는 100원을 쓰며 뭘 기대했을까. 시로마 미루가 정식 가수로 무대에 선 모습? 아마도 그랬을 거다. 프로듀스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이 원했던 것은 공정한 경쟁을 거친 참가자들이 데뷔에 성공해 무대 위에 서는 것이었다. 시청자들과 내가 쓴 문자투표비는 단돈 100원이지만, 그곳에는 참가자에 대한 응원과 지지가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그 100원은 꼭 돌려받아야 했다. 상처 받은 내 마음과 함께.

커뮤니티 반응을 둘러봤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재판에서 100원을 배상하라는 명령이 나왔다는 소식에 본인들도 문자투표비를 돌려받겠다며 들떠있었다. 직접 배상명령신청서를 작성했다며 인증샷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핸드폰 여러개로 투표했는데 신청해도 되나요” “문자 투표 2번이나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족 핸드폰 총동원에서 했는데 방법이 없나요?”라며 조언을 구했다.

27일 '프로듀스 101' 제작진에 대한 배상명령신청서를 직접 작성해봤다. 최민우 기자

그날의 문자투표 증명할 길이 없다?
‘100원 배상’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프로듀스101 진상규명위 고소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태환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배상명령신청서를 직접 작성해봤다. 양식은 법무법인 블로그 등에 공개된 자료에서 그대로 따왔다. 우선 사건 번호을 적은 뒤, 피고인으로 ‘프로듀스 시리즈’ 메인 프로듀서 안준영씨, 총괄 프로듀서 김용범씨, 프로듀스 48 문자투표를 담당한 보조 PD 이모씨 등 3명을 적었다. 배상금액은 문자 투표 비용인 100원으로 산정했다.

이어 배상 내용에 ‘피고인들은 사전에 순위를 결정해 문자 투표의 결과를 반영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8월 31일 프로듀스48 12회 생방송에서 생방송 문자 투표를 실시했고, 이에 속아 휴대폰으로 문자 투표를 해 100원의 피해를 봤다.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다’라고 적었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

문제는 문자 투표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무려 2년 3개월 전에 100원을 소액결제한 내역을 확보하는 게 예상보다 어려웠다. 소액결제 내역 및 발신 이력 등을 확인하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보관 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지난해 휴대폰을 바꾸기까지 했다. 이런 경우 추적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도 길은 있다…변호사가 알려준 지름길

참여한 기록이 없으니 다 틀린 일인가. 변호사 대답은 의외였다. 피해자가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도 법원이나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자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환 변호사는 “문자 투표를 한 내역 캡처본 등 직접 증거가 있는게 제일 좋다”면서도 “하지만 직접증거가 없더라도 기록열람신청이나 문서송부촉탁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원래 집단사기 피해의 경우 검사가 범죄 일람표에 피해자를 전부 특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수백만명에 달해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기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검찰이 프로듀스 시리즈 제작사인 CJ ENM에서 압수한 로데이터가 있다. 이걸 뒤져 투표에 참여한 내 휴대전화 번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배상신청 절차의 경우 소송촉진법 제30조에 의거해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소송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재판부에 있으니 자료를 보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자료 공개가 어렵다면 법원이 직접 확인하라고 요청해도 된다”며 “민사 절차에선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신청을 통해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청서는 썼지만…실낱같은 희망들

법원에 기록열람신청을 한다는 내용을 끝으로 배상명령신청서 작성을 완료했다. 이대로 법원에 제출하면 프로듀스 제작진들에게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아쉽지만 불가능했다. 제작진에 대한 형사재판이 항소심까지 완료됐기 때문이다. 소송촉진법 26조에 따라 배상신청은 형사재판의 항소심 변론이 종결되기 전까지만 낼 수 있다.

아쉽지만 모든 길이 다 닫힌 건 아니다. 대법원에서 원심을 파기환송해 항소심 재판이 다시 열리면 배상신청을 낼 수 있다. 제작한 신청서는 잘 보관해야겠다.

사소송도 방법이다. 이때는 문자투표비용 100원은 물론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고 제작진을 고용해 프로그램을 맡긴 CJ ENM에도 함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배상명령의 경우 직접적인 사기 피해 금액인 100원밖에 청구할 수 없지만 민사로 들어가면 위자료를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 예상 금액은 직접피해금 100원에 정신적 피해로 인한 위자료 10만원 등 총 10만100원 정도는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작사인 CJENM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 100원을 받기 위해 배상명령을 신청하는 것보다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고 말했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바꿨다.
그 결과 억울하게 탈락한 피해 연습생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 수밖에 없고,
국민 프로듀서로서 자부심을 품은 시청자들은 배신감을 갖게 됐다.”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프로듀스 제작진에게 한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제작진이 이날의 질타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소심 판결은 나왔지만, 피해를 본 시청자들에 대한 구제는 이제 시작이다. 프로듀스 제작진에게 죄에 맞는 형벌이 내려지길, 그리고 피해자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해볼lab]은 ‘해볼까?’라는 말에 ‘실험실’이라는 뜻의 ‘lab’을 조합해 만든 단어입니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직접 체험해보고, 그 감상을 솔직히 담았습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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