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방어” vs “리벤지포르노” 성관계 몰래녹음 처벌 불붙은 찬반

전문가 6인에게 물었다


“무고죄를 방어할 유일한 수단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음성 녹취도 리벤지포르노가 될 수 있습니다.”

일명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과 관련해 27일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에 등록된 의견들이다. 녹음을 금지하면 성폭력 무고에 대응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남성들의 우려와 동의 없는 녹취 자체만으로도 범죄라는 여성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 인터넷상에서도 뜨거운 찬반 토론이 한창이다.

국회입법예고 사이트 캡처

이 같은 논란은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면서 촉발됐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관계 상황을 녹음하더라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 유포 시에만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해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개정안은 몰래 녹음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영리 목적으로 배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했다.

강 의원은 “법의 공백을 이용해 몰래 녹음한 음성 자료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녹음물까지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투숙객들의 성관계 소리를 3년간 녹음한 40대 모텔 직원이 방실침입,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 간 몰래 녹음으로 인한 피해 제보도 메일로 들어와 입법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7일 국회 입법예고 게시판에 올라온 찬반 의견. 국회입법예고 사이트 캡처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에 이 개정안 관련 의견은 3만개를 넘겼다. 다른 법안에 대한 의견 수가 대부분 10개 미만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찬성하는 네티즌은 ‘몰래’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상대가 동의했다면 몰래 녹음할 이유가 없고, 동의 없는 녹음은 당연히 범죄라는 것이다. 음성만으로도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디지털 성범죄가 지능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이런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무고죄’를 언급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녹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성범죄 유죄가 인정되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한 네티즌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 확보가 녹음”이라고 했다. 다른 네티즌은 “차라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전문가 6명에게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다수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뜻밖이었던 건 성폭력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온 이들 가운데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입법 목적이 불분명한데다 득보다 부작용으로 인한 실이 크다는 우려가 나왔다.


“피해자 감정 중요…구체화 필요해”

전문가 6명에게 문의한 결과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은 2명뿐이었다. 서혜진 변호사는 찬성 측에서 언급한 ‘피해자의 감정’을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 입장에서 성관계 녹음파일의 존재를 불법촬영물과 유사한 정도로 느끼는 피해 감정이 있다”며 “성관계 음성 녹음은 일반 대화 녹취와 동일하게 취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녹음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피해자가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할 수도 있지만 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녹음하는 경우는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태정 변호사도 “거부 의사 표시가 녹음되지 않았다고 합의된 성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그걸 빌미로 ‘신고하면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를 음성으로 2차 가해할 여지도 있다”며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좀 더 구체화가 필요하다며 “구속 요건에 ‘성적 만족을 위한 (녹음)’ 등의 문구를 넣어 불순한 목적일 때만 처벌하는 식으로 하면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제안했다.

“입법 순기능 적어…불필요한 논쟁까지”

나머지 4명은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한 전문가는 오히려 피해자의 증거 수집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한 경우는 어떻게 할 건가”라며 “졸속 법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법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부분이 명확해야 한다”며 보호하고자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부작용이 없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포가 문제라면 유포와 관련된 부분으로 압축하고, 녹음을 금지하려면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폐해를 저울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 녹음까지 처벌하는 게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녹음파일을 소지하는 것 자체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전에 섣불리 입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며 “의도를 가지고 녹취했거나 그걸 토대로 범죄행위를 했다면 몰라도 단순 녹음을 처벌하는 것은 규제 목적이나 정당성이 너무 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녹음물을 유포했을 경우 피해자의 신원이 특정된다면 이미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다 있다”면서 “명예훼손죄, 협박죄, 음성 유포 시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전문가는 불필요한 남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입법으로 인해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이 어느 정도인지와 얻게 되는 이익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걸 만든다고 성폭력이 줄어드나, 양형이 높아지나”라며 “녹음만 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디지털 시대에 음성파일이라고 명시해야만 하나”라며 “음성도 파일이고, 영상도 파일이다. 디지털 포렌식을 하면 파일이 다 살아나고, 현행법에서도 파일로 처벌하기 때문에 사실상 처벌의 증거로 삼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불필요한 남녀 논쟁까지 불러일으킨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녹음으로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개인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면에서 일괄적 법안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세훈 변호사는 “녹음은 촬영과 다르게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을 수 있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도 굉장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사안의 경중을 구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과도한 처벌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 간 녹음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면서도 “제삼자의 녹음을 성범죄로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녹음, 유일한 증거 아냐…과장됐다”

다만 ‘성폭력 무고 입증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서 변호사는 “무고나 성범죄 유무죄 판단에 있어 녹음이 유일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일반의 오해나 과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 변호사도 “실상 사건화되는 단계를 보면 (녹음물을) 증거로 가지고 오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제출하더라도 오히려 수사기관에 불리한 인상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인 점을 이용해 간음하는 준강간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 경우 피의자 측에서 ‘성관계 당시 피해자의 의식이 온전했다’거나 ‘온전치 못한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녹음파일을 제출할 때가 있는데 늘 유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녹음 파일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말을 하고는 있으나 의식이 온전하기보다 인사불성으로 보이는 경우 범죄 성립을 증명하는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며 “또 녹음을 하는 행위 자체가 통상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도 추후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있음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으로 참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김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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