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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광장을 가다/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바로크 거장 베르니니 설계…천국 열쇠와 베드로의 죽음을 목격한 오벨리스크

성 베드로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네로경기장에서 베드로 사도의 죽음을 지켜본 이 오벨리스크는 목격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김재중 선임기자

바로크 시대의 거장 베르니니가 평생 머물렀던 로마를 떠나 외국을 방문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1655년 루이 14세로부터 프랑스 파리 루브르궁의 동쪽 파사드를 건설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다. 베르니니는 파리에 머물면서 심혈을 기울여 설계안을 만들었지만 루이 14세는 그의 디자인을 거부했다. 베르니니가 공공건물과 광장의 조화를 중시한 반면, 루이 14세는 태양왕답게 장엄하고 웅장한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결국 베르니니는 6개월 만에 로마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철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성 베드로 광장을 만드는데 몰두한다.

광장은 도시 중심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치밀하게 설계해 조성되기도 한다. 1667년 완성된 성 베드로 광장은 가톨릭 교회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위기에 처했을때 교황이 베드로 사도로부터 이어온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만든, 세계 최고의 기술과 완성도를 자랑하는 종교 광장이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15일 찾아간 성 베드로 광장은 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로마의 명소인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콜로네이드(열주) 공간에 길게 줄지어 서 있었고, 성당을 빠져나온 이들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여유있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광장에는 두개의 분수가 설치돼 있어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준다.

성 베드로 광장에 들어서면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높이 40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오벨리스크는 서기 40년 칼라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원석이다. 가톨릭 교회 총본산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이교도의 상징인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이유는 뭘까. 바로 이 거대한 대리석이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광장은 원래 네로 황제의 경기장이 있던 자리였다. 오벨리스크는 베드로 사도가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서 순교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목격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훗날 네로의 경기장은 모두 철거되었으나 오벨리스크는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광장 중심에 ‘목격자’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십자가를 얹어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주위에는 네 개의 기둥이 일렬로 서서 광장을 감싸도록 설계했고 웅장한 도리스식 열주 위에는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다.

바티칸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성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이 열쇠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대 교황으로 교회 반석이 된 베드로의 상징이 바로 천국의 열쇠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이 교회 반석으로 세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고 지상교회를 맡겼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오른손에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 사도의 전신상이 성 베드로 성당 왼편에 세워져 있다. 사도 베드로의 적통을 잇는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지상교회 수장으로서 최고 권위를 천명하기 위해 천국 열쇠 모양으로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조성한 것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광장을 설계하면서 정사각형과 원을 배제했다. 정사각형과 원은 비례와 균형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주요 구성요소다. 르네상스 양식에 이어 등장한 바로크 양식은 비례와 균형에서 벗어나 역동성을 강조한다. 바로크 거장답게 베르니니는 성당 전면부에 접하고 있는 사다리꼴의 광장(레타 광장)을 설계하면서 역원근법을 적용했다. 이는 사람들이 광장에 진입했을때 성당이 실제 거리보다 가깝게 느끼게 하는 착시효과를 노린 것이다. 타원형 광장(오블리콰 광장)은 베드로 성당의 수평적 단조로움을 상쇄하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에는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기법으로 회화, 조각, 건축 등 다양한 예술형식을 무대장치의 요소로 보는 ‘장경주의’가 적용됐다. 즉 베드로 성당은 무대, 광장은 객석으로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실제로 베르니니는 장면연출에 관심이 많았고, 희곡을 40여편이나 남겼다. 건축적 광장은 무대를 제공하고, 그 무대를 집단적 열망과 일치시킨다. 284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장엄한 타원형 광장은 교황의 축복을 받기 위해 모여드는 수많은 군중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도 같다. 성 베드로 광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무엇보다 성 베드로 광장은 열린 공간이다. 베르니니는 광장 전체를 열주의 숲으로 막아버리지 않고 테베레 강과 로마 시내 쪽을 열어두었다. 타원형 광장으로 들어오는 문 앞의 루스티쿠치 광장은 주변 마을로 연결되는 오픈 스페이스 같은 모습인데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환영의 공간을 연출한다. 그래서 성 베드로 광장은 베드로 사도가 두 팔을 벌리고 바티칸을 찾아오는 사람을 모두 환영하는 인상을 준다. 베르니니는 로마 시가지에서 성 베드로 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일련의 어프로치 시퀀스(approach sequence)를 역동성 있게 그리고 장엄한 교향곡처럼 드라마틱하게 디자인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바로크 시대의 웅장함만을 자랑하는 공간이 아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이며, 천국의 열쇠가 상징하듯 천상으로 인도하는 영원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 베드로 광장은 건축과 디자인, 조형적 측면 외에 영성적인 의미를 갖는다. 교황은 일요일이나 특별한 축일에 광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코로나19가 유럽을 휩쓸고 있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성 베드로 광장은 텅 비었으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기도로 충만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28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한 특별기도를 거행했다. 그는 홀로 제단에 올라 “짙은 어둠이 우리 광장과 거리와 도시를 뒤덮었다”며 주님의 자비와 마음의 위안을 청했다. 성 베드로 광장은 훗날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희년을 선포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바티칸=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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