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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광장을 가다/이념의 시대, 체제의 선전장된 모스크바 붉은광장

공산주의 붉은 물결 연상…매년 군사 퍼레이드 장소로 활용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는 2월인데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마켓이 설치돼 있어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붉은광장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전경. 광장 왼쪽에는 크렘린 성벽이 있고 북쪽 끝에는 붉은 벽돌로 된 역사박물관이 있다.

붉은광장의 아름다운 야경. 광장의 남쪽 끝에는 양파 모양의 돔이 이색적인 성 바실리 성당이 있고, 오른쪽엔 크렘린 관람객들이 출구로 이용하는 스파스카야 망루가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역사는 크렘린과 붉은광장에서 시작됐다. 방송에서 러시아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 대부분 배경화면으로 견고한 크렘린 성벽과 넓은 붉은광장, 양파 모양의 돔이 특징인 성 바실리 성당이 나온다. 그만큼 크렘린과 붉은광장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상징이다.

크렘린 성벽 북동쪽에 위치한 붉은 광장은 15세기말에 조성됐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였다. 그래서 매매, 또는 장사를 의미하는 ‘또르크(Topr) 광장’이라고 불렸다. 그 후 16세기에 광장 남쪽의 삼위일체 교회 이름을 따서 ‘삼위일체 광장’으로 바뀌었다. 1571년 대화재 발생 후 ‘화재광장’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7세기 후반 국가의 명령으로 지금의 역사박물관 등 행정 건물이 들어서면서 점차 번화하게 되고 붉은광장으로 불리게 됐다.

18세기 초부터 붉은광장은 모스크바의 문화생활 중심지로 바뀌어갔다. 1702년 표트르 대제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이 곳에 연극 공연장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통치의 심장부인 크렘린 옆에 위치한데다 모스크바 중심의 넓은 공간이었던 까닭에 러시아 황제 차르의 명령을 전달하는 장소나 정치범 등을 공개 처형하는 장소로 악용되기도 했다. 특히 조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이 붉은광장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장으로 향했다. 현재 붉은광장 주변에는 조국전쟁박물관이 우뚝 서 있다.

붉은광장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광장 중앙에서 공개 처형을 시행했던 16세기 러시아 황제 ‘폭군 이반’때 이름이 지어졌다거나 크렘린의 붉은 성벽과 붉은색 석재로 지어진 레닌 묘, 역사박물관의 붉은색 건물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또 소련 시절 이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물결을 이루던 모습이 연상되면서 붉은 광장으로 명명됐다는 등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붉은광장은 오역에서 비롯됐다. 붉은광장을 러시아어로는 ‘크라스나야 플로시치’라고 하는데 ‘크라스나야’에는 ‘붉은’이라는 의미 외에 ‘아름다운’이란 뜻이 있다. 붉은광장의 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광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후 체제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이미지가 광장 이름을 지배하게 돼 영어로는 ‘Red Square’라고 표현한다. 결국 붉은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본질을 잃고 사회주의 체제 선전장으로 전락한 셈이다.

붉은 색은 사람을 선동하는 효과가 있다. 소련 시절에 주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곤 했던 붉은광장에서는 매년 5월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 군사 퍼레이드나 국가 차원의 큰 행사가 열린다. 붉은광장의 북쪽 끝 ‘부활의 문’을 나서면 마네쥐 광장의 주코프 장군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주코프 장군은 1945년 5월 8일 소련군 최고 사령관 이름으로 베를린에서 나치 독일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6월 24일 붉은광장에서 개선 행진을 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 2월 8일 방문한 붉은광장은 주말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붉은광장은 모스크바 여행의 필수 코스다. 광장 주변에 포진한 크렘린 성벽, 레닌묘, 국립역사박물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성 바실리 성당, 카잔대성당, 부활의 문, 러시아 최고의 굼 백화점 등이 붉은광장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그레고리력’을 따르고 있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고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따르고 있다.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성탄절은 12월 25일이지만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13일 후인 1월 7일 성탄절이다. 그래서인지 붉은광장에서는 2월인데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마켓이 설치돼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광장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위해 어린이 놀이기구와 스케이트장도 설치돼 있었다.

붉은광장 남쪽 끝에 있는 성 바실리 성당 옆에는 크렘린 관람객들이 출구로 이용하는 스파스카야 망루가 있다. 크렘린의 망루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1491년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가 작업한 이 망루는 사면에 지름 6m짜리 커다란 시계가 달려 있다. 17세기초에 설치한 것인데 당시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스몰렌스크의 구세주 이콘이 걸려 있어 ‘구세주 탑’이라고도 한다. 붉은 광장에서 보면 아치문 위쪽에 큰 이콘(성화)이 보인다. 예전에는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가 설치돼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별이 있다. 성 바실리 성당 아래로는 모스크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붉은광장은 사회주의 권력의 이념적 중심이다. 크렘린 성벽 쪽에는 레닌이 밀랍인형처럼 방부 처리돼 안치된 거대한 무덤이 있다. 붉은광장은 소비에트연방(소련) 시절 국가의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자기 영토에서 완벽한 통제자로 인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통치자의 본질적 특성이다. 광장은 관 주도 행사에서 대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배경이자 무대가 된다. 철권 통치를 휘두른 스탈린은 붉은 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 등을 통해 권력을 과시했다. 국가공휴일에 벌어지는 군사 퍼레이드 등 볼거리를 활용해 현존 질서를 신격화하는 것이다.
레닌 묘를 붉은 광장 한켠에 거대하게 만들도록 지시한 사람도 스탈린이다. 러시아의 영원한 영웅, 레닌의 후계자가 자신임을 온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붉은 광장 북쪽 끝 역사박물관과 조국전쟁박물관 사이에 있는 부활의 문은 153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스탈린이 붉은 광장에서 이뤄지는 군사 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를 지시해 사라졌다가 스탈린 사후에 재건됐다.

광장은 통치자의 군림과 통치자가 표상하는 질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기호이기도 하다. 광장은 권력을 발산하는 장소이며 통치자의 권력을 증명하는 훌륭한 무대가 되고, 각종 의식이 행해지는 동안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특히 사회주의 광장은 개인의 힘에 대한 초국가적 믿음을 형성하고 정부의 중앙 집중화를 공고히 한다. 붉은광장이 슬라브족의 러시아 제국 이미지보다는 이념적 색채의 소련 이미지가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모스크바=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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