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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삽 뜨기도 전 반발 직면한 ‘런던 中대사관 이전’

中, 2018년 옛 왕립 조폐국 부지 매입
홍콩·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논란에 ‘대사관 이전 반대’ 여론
“중·영 긴장 관계도 영향”

영국 런던 왕립 조폐국 부지에 들어설 중국의 새 대사관 조감도.미국 CNN방송 홈페이지 캡쳐

중국은 영국 대사관을 새로 짓기 위해 2년 전 런던 동부 타워 햄릿구(區)에 있는 왕립 조폐국 부지를 사들였다. 그런데 대사관 신축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역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부지 매입 때만 해도 중국 대사관 입성을 반겼던 지역 여론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침해 논란 등을 겪으며 180도 달라진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타워 햄릿구 주민들이 중국 대사관과 공산당의 등장을 새로운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대사관 부지를 물색하던 중국 정부는 2018년 3억661만달러(약 3388억원)에 옛 왕립 조폐국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은 런던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자 무슬림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다. 무슬림이 전체 주민의 3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 사이에서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중국 대사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의원인 라비나 칸은 “중국 대사관이 들어설 옛 왕립 조폐국 앞은 시위대가 진을 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도 지난달 “주영 중국 대사관을 19세기 차이나타운이 있던 곳과 가까운 왕립 조폐국 터로 옮기기로 한 결정은 가슴 따뜻한 귀향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며 “대사관이 실제로 이전하기까지 수년이 걸리겠지만 이미 주민들과 지방 의원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전했다.

2년 전 중국 정부가 옛 왕립 조폐국 부지를 매입했을 때만 해도 지역 사회는 궁핍한 자치구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중국 정부 역시 새 대사관이 런던 내 중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류샤오밍 주영 중국 대사. 주영 중국대사관 홈페이지. 뉴시스

그러나 지금 중국 대사관은 영국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인권 탄압,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영국 야당인 노동당은 지난 10월 류샤오밍 주영 중국대사에게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침해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노동당은 서한에서 위구르족에 대한 구금, 광범위한 감시, 종교 자유 제한, 강제노동, 산아제한 등을 하나하나 거론한 뒤 “신장, 홍콩, 티베트에서의 인권 유린에 대한 지역 시민들의 우려를 존중하고 국제 인권법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류 대사는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그는 특히 베이징 주재 영국 대사관도 재개발 허가가 진행 중임을 강조하면서 “영국 역시 중국 대사관 건립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대사의 이런 대응은 타워 햄릿구 주민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고 SCMP는 전했다.

현재 런던 서쪽 포틀랜드플레이스에 있는 중국 대사관은 1973년 세워졌다. 그동안 늘어난 파견 외교관들이 지내기에는 공간이 좁아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사관 문을 열고 나오면 곧바로 거리여서 반중 시위자들을 직접 마주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새 대사관은 당초 올해 5월쯤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 공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주영 중국 대사관 측은 SCMP에 “새로운 대사관 입안 신청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며 “왕립 조폐국 부지 건립안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영국의 외교적 긴장이 대사관 건립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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