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광주시민이 적인가?…5·18헬기사격 40년 만에 진실로 드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1997년 대법원 이후 23년 만에 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의 진실이 40년 만에 법정에서 가려졌다.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그날 이후 처음으로 5·18이 발발한 광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5·18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 기소된 전 씨에게 30일 법원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기소된 지 2년 6개월 만에 이뤄진 선고 재판은 5·18 당시 자국민을 향한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를 사법당국이 공인하고 계엄군 집단발포를 시민군에 맞선 자위권 발동이라고 해온 신군부 주장을 ‘헬기 사격’을 통해 검증한다는 의미에서 관심이 컸다.

‘헬기 사격’ 실존을 전제로 한 전 씨의 유죄 판결에 따라 당시 신군부가 광주에서 자행한 무자비한 군사력은 정부 기관 보고서에 이어 사법적 판단까지 더해진 객관적 사실로 역사 속에 남게 됐다.

5·18 당시 시민군과의 총격전에서 이뤄진 단순 총기발포와 달리 중무장한 500MD 헬기 사격은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우월한 군사력을 투입했다는 방증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전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 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기간 군이 헬기 사격한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8년 5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1980년 5월 21일 헬기 사격 피해자, 법정 증언 14명. 수사기관 종사자 2명 진술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일부 진술 역시 공소사실과 들어맞는다”고 밝혔다.

사자명예훼손죄의 법정형 기준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전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청각 보조장치(헤드셋)를 쓰고 재판에 참여한 전 씨는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변호인 측 주장과 달리 자신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재판장 질문에 각각 “맞습니다”라고 또렷하게 답변했다.

재판부는 “501 항공대 500MD 부조종사는 당시 광주공원에서 한번 위협 사격하라는 교신을 들었고 31항공단 탄약 관리 하사는 5월 21일 고폭탄 등 20㎜ 보통탄과 7.62㎜ 실탄이 1/3가량 소모됐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500MD 헬기가 7.62기관 총으로 광주 도심 상공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격했다는 유력한 증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전교사 교훈집 등 군 관련 문서에도 상관의 구두 명령에 따른 무장헬기 동원과 불확실한 표적에 대한 헬기 사격을 암시하는 ‘공중 화력 지원’ 문구와 실제 상황이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앞선 무혐의 취지의 1995년 검찰 수사는 헬기 위협 사격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재판부가 선고문을 읽어가는 동안 법정 밖에서는 일부 5월 단체 회원 등이 “전두환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전 씨는 미필적으로나마 5월 21일 불로교 일대에서, 27일 전일빌딩에서 5·18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식할 수 있다고 보인다.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고록을 출판하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성찰과 단 한마디 사과가 없었다”고 선고배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탄흔 분포에 대한 감정 결과를 보면 UH 헬기가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전일빌딩에 사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둥 뒷면의 탄흔이 없는 10층 바닥 등의 흔적은 전일빌딩 내부의 교전 증거가 없고 외부에서 방사성 형태로 총격이 이뤄졌다는 사실로 볼 때 검찰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실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명시된 문건은 없었지만 “헬기 사격이 단 한발도 없었다”는 전 씨의 주장은 의견의 표현이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5월 21일과 24일, 27일 3일간의 헬기 사격 중 5월 21 일만 유죄로 판단하고 5월 27일은 헬기 사격은 인정되나 법리상 무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법정 촬영 중계 요청이 있었지만, 피고인 동의 없어 허가하지 않았다. 국민적 관심이 높고 공공이익이 우선돼야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며 법정촬영을 허가하지 않은 이유도 밝혔다.

청각보조장치(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재판에 참여한 전 씨는 선고가 진행되는 동안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붙인 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주문 낭독에 앞서 5·18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전 씨가 숱한 고통을 겪어온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