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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로 꾸민 ‘봄’ 덕분에 …더 빛나는 ‘세한도’

저토록 메마른 붓으로 그린 그림이 또 있을까.
세한도 전시전경.

갈필의 겨울 풍경에서 제주에서 유배 시절을 견디던 조선 후기 서화가 추사 김정희의 시린 심정이 세월을 건너뛰어 전해온다. 추사는 1844년, 이 그림에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몇 그루를 그려 넣음으로써 스승이 달라진 처지를 개의치 않고,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 제주로 보내준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의 의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공책 크기의 단출했던 그림은 이상적이 중국에 가져가 청의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이 덧붙여지고, 근대기 들어 오세창, 정인보 등 감상자의 글이 추가되면서 총 길이 14m 두루마리 대작이 됐다. 추사 김정희의 걸작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공개됐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전에서다. 전체 두루마리까지 모두 전시에 공개된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부자 컬렉터 손세기(1903-1983)·손창근(91)씨의 기부 정신을 기리는 의미도 있다. 창근씨는 대를 이어 수집한 컬렉션 304점을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데 이어 올해 마침내 최고의 수집품 ‘세한도’까지 내놓았다.

추사의 세한도는 ‘겨울’과 ‘봄’ 이라는 상반된 키워드를 내세워 작품을 배치한 전시 기획력 덕분에 더욱 빛이 난다. 세한도만 전시했다면 걸작 전의 성격으로 끝날 것인데, 봄을 의미하는 평안감사향연도를 함께 내놓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입체적인 전시를 만들어냈다.

겨울을 상징하는 전시가 세한도 원작을 통해 갈필이 주는 스산한 맛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면, 봄 전시는 기존 전시 문법을 혁파한 미디어 특별전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봄날의 화사함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다.
'평안감사향연도'의 그림 속 장면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선 후기 어느 평안감사의 부임을 기념하여 벌어진 잔치 장면을 그린 기록화다.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 등 세 폭 병풍화로 구성됐다.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세로가 아닌 가로로 그려진 병풍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세 점의 병풍에는 평안감사, 아전, 기생, 선비, 장사치, 노인과 아이 등 계층을 망라한 총 2509명의 사람이 등장해 다양한 표정과 행동으로 봄날의 기쁨과 잔치의 흥겨움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길’ ‘환영’ ‘잔치’ ‘야경’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신이 난 표정으로 연회 구경 가는 선비, 물건이 더 팔릴까 들떠있는 장사꾼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실사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벽면을 활보한다. ‘환영’은 그림에 나오는 북춤, 학춤, 검무 등 여러 춤을 현대 무용수들이 재연하는 영상이라 새로운 맛을 준다. ‘잔치’가 압권이다. 거대한 길이 25m 벽면에 온갖 잔치 장면이 흘러간다. ‘야경’에서는 집마다 등이 켜지고 강가에는 횃불이 일렁거리는 등 대동강에서 열린 밤의 잔치 장면을 그래픽 미디어 아트로 구현했다. 마지막에는 병풍 원작을 전시돼 깨알 같은 등장인물과 미디어 아트로 표현된 인물을 비교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미술부 오다연 학예연구사는 “ 세한도와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선의 관리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과 가장 영예로운 순간을 상반되게 보여준다. 이에 착안해 기획한 전시”라고 말했다. 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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