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변신 낙하산까지… 금융인사 결국 모피아 싹쓸이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 퇴임 28일 만에 보란 듯 거래소 이사장 ‘직행’
“퇴직 다음날 방산업체 취업한 제대군인” 강력 비판하던 문 대통령은 ‘침묵’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모피아’(재무관료+마피아)가 최근 주요 민간 금융기관·단체장 자리를 싹쓸이하듯 나눠 먹는 동안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친박’(친박근혜)에서 ‘친문’(친문재인)으로 변신한 정치인 출신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 이런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던 문 대통령은 말이 없다.

한국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30일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차기 이사장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손 전 부위원장은 그동안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모피아 낙하산’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처음부터 손 전 부위원장이 퇴임과 함께 거래소 이사장으로 가기로 하면서 차기 금융단체장 인선이 짜맞춰졌다는 얘기가 있다”며 “도중에 ‘모피아가 다 해먹는다’는 얘기가 불거져서 일부 유력 인사가 출마를 포기하긴 했지만 결국은 모피아가 다 해먹은 게 됐다”고 말했다.

손 전 부위원장의 거래소 이사장 유력설은 11월 1일 도규상 전 경제정책비서관이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내정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세간에 흘러나왔다. 당초 차기 거래소 이사장으로 거론되던 도 전 비서관이 금융위로 갔으니 거래소는 손 전 부위원장이 가기로 정리되지 않았겠느냐는 게 금융권 안팎의 추론이었다.

손 전 부위원장의 거래소 이사장 내정으로 한 달여간 진행된 주요 4개 금융기관·단체장 인선은 모두 마무리됐다. 결과는 관직에서 직행하는 관료 1명(손병두), 민간에서 경력을 ‘세탁’한 관료 2명·정치인 1명으로 정리된다.

김광수 신임 은행연합회장

금융정보분석원장 출신으로 종전까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김광수 신임 은행연합회장은 1일 임기를 시작했다. 김 회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지난달 23일 은행연합회장으로 내정됐다.

당초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인물은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출신인 김용환 전 농협금융 회장, 재정경제부 고위직과 노무현정부 말기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다. 은행연합회 내부에서는 최 전 위원장을 가장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 등은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군 결정 전 잇달아 불출마 입장을 밝혔고 그 자리를 김광수 회장과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등 퇴직 후 민간에서 CEO(최고경영자) 경력을 만든 관료 출신이 채웠다. 김 회장은 최 전 위원장의 입후보 포기로 급하게 발탁된 감이 있다. 수장이 돌연 ‘이직’을 해버린 농협금융지주는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하고 부랴부랴 후임자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 내정자

4명 중 가장 먼저 손해보험협회장에 내정된 정지원 전 거래소 이사장은 오는 21일 공식 취임한다. 그는 지난달 2일 단독 후보로 추대된 데 이어 14일 정식으로 선임됐다. 손보협회 회추위가 지난 10월 그를 후보 명단에 넣었을 때만 해도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내정자와 김 신임 회장은 행정고시 27회 동기로 모두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부를 거쳐 금융위로 건너온 재무부처 출신 금융관료다.

이번 금융기관·단체장 인선은 정 내정자와 손 전 부위원장의 ‘배턴 터치’에서 시작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손 전 부위원장의 거취(퇴임 후 거래소행)가 정해지면서 정 내정자의 손보협회행이 결정됐고 이어 남은 은행연합회장과 생명보험협회장에 누가 갈지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정 내정자가 차기 손보협회장 후보로 단독 추대된 날과 손 전 부위원장이 퇴임한 날이 11월 2일로 같다는 점은 공교롭지 않다.

김광수 회장 내정 3일 뒤에는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이 차기 생명보험협회장 후보로 단독 추대됐다. 이때도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전 금감원장 같은 전직 금융관료가 유력하게 하마평에 올랐지만 후보 추천 절차를 앞두고 출마를 포기했다.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내정자

정 원장은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다. 대표적 친박 의원이었지만 박 대통령 탄핵 후 민주당으로 옮겨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그가 2018년 11월 보험연수원장에 선임됐을 때도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전직 관료와 정치인이 주요 금융기관·단체장을 싹쓸이하기는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김태영 전임 은행연합회장과 곧 자리를 내줄 신용길 생보협회장은 평생 금융업계에 몸담은 금융인이다. 특히 생보협회장은 지난 6년간 민간 출신이 맡아왔다.

1일 영상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 중인 문재인 대통령

인선 과정이 요란했지만 금융 당국이나 청와대에서는 단 한 마디 경고의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이던 2014년 10월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각 군 전력부서에 근무했던 제대 군인이 방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퇴직 다음날 취업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방산 비리는 결국 군피아 문제가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이자 적폐”라고 비판한 바 있다. 퇴임 후 28일 만에 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손 전 부위원장은 ‘전역 다음날 방산업체에 취업한 군인’이나 다름없는 경우다. 거래소는 금융위 감독을 받는 민간기관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모피아의 금융기관행을 비판했던 경제전문가 중 현 정부에서 요직을 맡은 이들도 이번 금융기관·단체장 인선에 침묵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설계자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모피아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모피아가 금융을 장악하면 금융에 변화가 있기 어렵다. 현상 유지에 급급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당시 한성대 교수이자 경제개혁연대 소장이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박근혜 정부가 금융에 대한 가닥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모피아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며 정부의 무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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