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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걸고 돌을 묶고…‘거꾸로 정신’으로 시대를 앞선 이승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야외 조각 공원에 깃발이 펄럭인다.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원로 이승택(88) 작가의 회고전은 이처럼 도입부부터 시선을 끈다..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바람을 걸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예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승택 회고전에서 야외에 재제작해 설치한 '바람'(1970년).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고 거꾸로 생각했고, 거꾸로 살았다”
전시장 입구, 작가가 직접 쓴 글씨는 ‘거꾸로’가 철학이었음을 웅변한다. 전시 타이틀도 그래서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이다.

함경남도 태생의 작가는 1950년 월남해 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했다. 조각하면 용접한 철 조각이 대세이던 시대였지만, 작가 인생의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62년부터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전’에 지속적으로 초대받으며 철사줄로 감은 청동조각을 시작으로 옹기(1964), 유리(1966), 비닐(1968) 등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재료를 사용한 작업을 발표하며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에 균열을 냈다.

70년대 들어서는 ‘현대미술조각회전’(1970)에 홍익대학의 빌딩들 사이에 100여m 길이의 밧줄을 걸고 커다란 헝겊 조각을 묶어 바람에 펄럭이게 한 대형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매여진 백자’(1975), ‘묶은책’(1976)을 발표하는 등 묶음 시리즈를 다양하게 변주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연기, 바람, 불, 물 등 형태가 고정돼 있지 않은 것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했다. 자신의 작품을 태워 한강에 띄워보내는 작업이 그런 예이다. 90년대 들어서는 환경미술로 발전한다. 한국 일본 중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벌인 ‘지구행위’ 퍼포먼스가 대표적이다. 거대한 풍선에 위성사진으로 본 지구를 극사실적으로 그린 뒤 굴리고 놀면서 생태 회복의 메시지를 던졌다.
무제(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 1988년경, 사진에 채색.

우리나라에서 설치 미술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용된 1990년대 이후 보편화되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렇게 30년 앞서 이런 작업을 선보였던 것이다. 전위적인 작업 세계는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기획자인 오쿠이 엔위저가 감독한 독일 뮌헨의 ‘전후: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1945-1965’ 전에 초대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인정 받았다.

한 번도 실험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의 작업세계가 가능했던 데는 동상 제작 작업을 하면서 생계문제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측면이 있었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는 동상 조각 1세대였던 김경승 윤영자 등의 홍익대 제자로 1970년대 들어서는 독자적으로 동상 작업을 했다. 이퇴계 선생(단국대), 윤봉길 의사 동상(독립기념관) 등이 대표작이다.
무제, 19682018, 스테인레스스틸, 스틸, 우레탄 비닐, (좌)363 x 185 x 110cm, (우)335 x 130 x 150cm. 작가소장.

이번 전시는 거꾸로의 정신으로 미술의 경계를 확장해온 원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시간 순으로 추적하듯 보여준다. 초기 재료 실험을 하며 옹기를 탑처럼 세우거나 노랑 파랑 비닐을 팽팽히 잡아당겨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보이도록 한 설치작업은 훗날 90년대 X세대의 작업 마냥 싱싱하다. 또 돌에 홈을 판 뒤 노끈으로 묶은 작업은 마치 부드러운 쿠션 같은 느낌을 내 물질의 고유한 느낌을 뒤엎는다.
무제, 1974, 돌, 철사, 29x35x32cm. 작가소장.

하지만 전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작품이 나열하듯 나왔다. 이를테면 묶음 시리즈를 보여주는 전시장에선 물성이 다른 도자기와 돌, 금속 재료들을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각각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전시장 밖에도 밧줄 회화가 과하게 내걸렸다.
전시 전경.

이 때문에 이번 전시는 회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생애 동안 생산된 모든 물량을 보여주는 자료실 성격이어야 할까, 공간 크기에 맞게 엄선함으로써 작가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할까. 관람자에겐 후자가 더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내년 3월 28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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