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롯데마트 사건에 울컥, 우린 ‘퍼피워커’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널리] 전합니다. 다섯번째 주인공은 예비 안내견의 첫걸음을 함께 하는 ‘퍼피워커’, 그들의 1년을 따라가 봅니다.
'퍼피워커' 이라지씨와 딸 남궁서윤양 옆에 예비 안내견 화담이가 얌전히 앉아있다. 이들은 헤어짐을 한달 앞두고 더 많은 추억을 쌓는 중이라고 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함께 사는 강아지와 딱 1년 뒤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같이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물론 휴가철이 되면 여행도 간다. 성격은 어떤지, 아팠던 적은 없는지, 뭘 좋아하는지, 꼼꼼히 기록한 일지는 필수다. 어쩌면 자식을 키울 때만큼이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누군가의 눈이 되어줄 아이들을 길러내는 ‘퍼피워커’의 이야기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이라지(44)씨와 딸 남궁서윤(12)양은 벌써 두 번째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취재진과 만나기 하루 전 퍼피워킹 중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화담이의 안내견학교 입소 날짜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 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딱 한 달. “인터뷰 내내 울다가 끝나면 어떡하죠?” 이씨의 농담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카메라 앞에 앉은 이씨와 서윤양은 화담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얻은 행복이 더 크다며 웃었다. 전날 있었던 롯데마트 안내견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는 같은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퍼피워커로서의 1년,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씨네 집앞 초인종 위에는 퍼피워커 가정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우리집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양성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겨있다. 최민석 기자

지구 엄마 그리고 화담이 엄마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난 예비 안내견들은 생후 7주가 되면 일반 가정집에서 1년간 사회화하는 퍼피워킹 과정을 거친다. 안내견이 됐을 때 모든 상황에 익숙하게 대처하기 위한 기초 생활 교육을 받는 셈이다. 그 후 학교로 돌아간 강아지들은 7~8개월가량 전문 훈련을 받은 뒤 총 3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안내견이 될 수 있다. 합격률은 30% 정도. 안내견은 그만큼 긴 시간, 많은 사람의 정성으로 어렵게 길러진다.

2018년 6월. 이씨와 처음 함께하게 된 강아지 이름은 ‘지구’다. 이웃 중 이미 퍼피워커 가정이 있어 낯설지 않았던 것도 계기가 됐지만, 마침 강아지를 길러보고 싶다던 서윤양의 역할이 컸다. 이씨는 “아이는 원했지만 제가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덥석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순 없었어요. 경험도 해보고 봉사한다는 좋은 의미로 시작한 게 인연이 됐네요”라고 회상했다.

지금은 훌륭한 안내견이 된 '지구'의 모습. 제일 왼쪽 사진은 지구와 처음 만날 날 찍었다. 퍼피워킹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지구는 합격률 30%에 불과한 세차례 시험을 모두 합격해 가족들을 기쁘게 했다. 이씨 제공

올해 1월 식구가 된 화담이다. 맨 왼쪽 사진은 화담이가 처음 집에 온 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화담이는 이제 한달 후 집을 떠난다. 이씨제공

지구는 지난해 9월 학교로 돌아간 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 안내견이 됐다. 지구를 훌륭하게 키워냈지만 이씨는 이 일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들어오는 강아지들의 퍼피워킹을 맡아줄 경력자를 찾는다’는 소식에 홀린 듯 재도전했다. “안내견들은 해서는 안 되는 것도 많고 해야 하는 것들도 정해져 있어요. 배변조차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켜 주인의 안내에 따르는 습관을 지녀야 하고요. 지구도 그걸 참 잘 해냈는데, 더 잘해봐야겠다는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 끝에 지난 1월 10일, 이씨는 화담이의 엄마가 됐다.

이씨와 서윤양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가만히 엎드려 있던 화담이의 모습. 시종일관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했다. 최민석 기자

“롯데마트 사건, 감정이입이 ‘확’ 되더라고요”
두 사람 얼굴에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던 건 지난달 30일 알려져 큰 공분을 산 롯데마트 안내견 사건 때문이었다. 이씨는 기사를 읽는 순간 감정이입이 되더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냥 길을 가던 중이었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 지나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굴지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교육도 수없이 했을 법한 곳에서 생긴 일이라니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강아지는 좋은 경험을 많이 쌓으면 나빴던 기억은 잘 이겨내고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퍼피워커는 어딜 가더라도 망설이게 될 수 있거든요. 부디 잘 극복하셨으면 해요”라며 위로를 전했다.

퍼피워커와 함께 다니는 예비 안내견들은 '안내견 공부중입니다'라고 적힌 옷을 입는다. 한쪽에는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한 보조견 표지가 붙어있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안내견 혹은 예비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최민석 기자, 이씨 제공

이런 일은 이씨 가족에게도 여러 번 있었다. 한번은 유명 관광지 남이섬에 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관계자 측은 “작은 강아지만 가능하다”며 거절했다. 당시 화담이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라고 적힌 노란 옷을 입고 있었고 거기엔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한 보조견 표지도 붙어있었다. 이씨가 퍼피워킹 중임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일행 중 시각장애인이 없지 않느냐”는 대답뿐이었다.

“나가기 전 늘 생각해요. 상대방이 ‘개는 안 된다, 나가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상대방이 세게 나오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걸 아무리 복기해도 대처할 수 없어요. 사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 나를 거절하거나 못 들어오게 한 경험이 많이 없잖아요. 해야할 말은 안 나오고 감정적인 상태가 될 수 있죠. 저는 둘째치고 ‘내가 힘들어하고 사람들이 소리치는 걸 봤으니 얘도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 좋아요.”

이씨와 서윤양 그리고 화담이가 산책을 나섰다. 화담이는 가족의 속도에 맞춰 가볍게 걸었다. 살랑거리는 꼬리는 '기분좋음'을 의미한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이렇게 바라봐주시면 어떨까요?
“여기는 털이 날려서 안 되는데, 잠깐 밖에 묶어놓고 들어오면 안 돼요?” 매장에 들어서기 전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쪽도 매몰찬 거절이 싫어 건넨 나름의 제안이겠으나, 이씨가 “이 말만큼은 꼭 피해달라”고 당부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그는 “저희야 그냥 듣고 넘길 수 있지만, 안내견은 강아지라기보다 누군가의 길을 안내하는 ‘눈’이거든요. ‘당신 눈 빼놓고 들어오라’는 이야기와 다름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지하철 역 안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지구의 모습(왼쪽)이 아주 의젓하다. 오른쪽 사진 속 화담이는 가족들과 마트 구경 중이다. 가족들은 예비 안내견 혹은 안내견을 만난 분들에게 "누군가 갑자기 다가오거나 음식이 앞에서 왔다갔다 하면 유혹당하기 쉬워요.(웃음) 뒤에서 '잘한다, 착하다' 말로만 인사해주시면 더 힘을 내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 이씨 제공

대중교통을 탈 때, 사람들이 북적이는 마트에 갈 때. 퍼피워커와 예비 안내견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는 순간이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간에?” “훈련이라면 사람 없을 때 오면 되잖아”라는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번에도 안내견이 시각장애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한 번만 떠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분들에게도 직장이 있고 가야 할 학교가 있어요. 러시아워에 차를 탈 수 있고 마트에 갈 수도 있는 거고요. 우리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계시거든요. 조금 불편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날 그 시간, 그 장소를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작은 배려라고 한 발짝 물러서서 봐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이씨 가족 역시 퍼피워킹을 하기 전까지 안내견이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 몰랐다. 안내견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만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안내견이 탄생하는 긴 과정을 직접 경험한 뒤 그 소중함이 크게 다가왔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맞아요. 저희는 앞이 다 보이고 안내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비 안내견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녀볼 수 있어야 훌륭한 안내견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로봇이 아니니까요.”

지구의 퍼피워킹을 끝내고 이씨가 받은 감사장이다. 이씨는 지구가 학교로 돌아가던 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서윤양의 말로는 "엄마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최민석 기자

1년이 지나면 우리는 예정된 이별을 합니다
수차례 거절과 상처도 이별 앞에서는 애틋한 추억이 된다. 이씨는 지난해 9월 7일 지구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서던 순간부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집에 와서는 ‘앞으로 3년은 더 울게 될 것’이라는 안내견학교 담당자들의 말을 실감했다. 일주일 후 청소를 하는데 어딘가에서 털 한 뭉치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고 이씨는 그걸 쥐고는 한참을 울었다.

지구와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다. 안내견들은 10살이 돼 은퇴하면 퍼피워커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이씨도 먼 훗날 지구와 화담이를 다시 들여 함께할 생각이다. 이씨 제공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건 작별 순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사별이 아니라는 것, 이 아이가 좋은 파트너를 만나 선한 일을 할 거라는 기대다. 이씨는 “섭섭한 마음은 당연한 거지만 나쁜 데 가는 건 아니니까요.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시험 통과하면 평생직장도 얻잖아요” 하며 미소지었다.

안내견들은 보통 10살 정도가 되면 맡은 임무를 끝내고 은퇴한다. 그리고 8년 전 자신을 돌봤던 퍼피워커 가정으로 되돌아간다. 워낙 공백이 긴 탓에 그 비율은 약 20%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이씨 가족은 지구와 화담이를 모두 다시 데려올 생각이다. 이별의 서글픔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미래를 그리며 얻는 힘 덕분이다. 화담이는 내년 1월 17일 첫 가족의 품을 떠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세 식구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앉았다. 엄마아빠보다 더한 군기반장이라는 서윤양은 "앉아" "엎드려"와 같은 훈련을 멋있게 해냈다. 최민석 기자

가장 ‘값진’ 선물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
두 마리의 예비 안내견이 이씨 가족에게 만들어준 가장 값진 선물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줬다는 사실이다. 특히 서윤양이 내놓은 대답은 무척이나 뜻깊었다. “저는 시각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했고 그분들의 일상을 몰랐어요. 그런데 지구와 화담이를 기르면서 장애인분들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화담이는 산책 도중 가족이 발길을 멈추자 그대로 섰다. 파트너와 걸음을 같이 하는 일,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잘 살피는 일이 안내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최민석 기자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매일을 사는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들과의 접점도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퍼피워킹은 잘 몰랐던,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씨는 화담이와 외출할 때마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런 어려움도 있겠구나’ 깨닫는다고 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격스러움을 얻은 적도 많다. 지구의 안내견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던 날이 그랬다. “나중에 내 자식이 서울대에 입학하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더라고요.” 이씨는 그날을 기억하며 또 웃었다.

이씨 집에는 벌써 크리스마스가 왔다. 잘 꾸며진 트리 앞에서 이씨와 서윤양, 화담이가 자리잡고 앉았다. 이씨는 "헤어짐이 슬프지만 은퇴한 화담이와 다시 함께 만날 날을 상상하며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최민석 기자

“어서 오세요~” 해줄 수 있는 사회
이날 함께 만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하우종 차장에게 퍼피워커의 의미를 묻자 그는 ‘지원자이자 동반자’라는 애정 가득한 표현을 썼다. 그러고도 “어마어마한 역할입니다. 토대를 닦아주는 사람들이죠. 금전적으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저분들 없으면 시작도 못 합니다”라며 한참을 고마워했다.

화담이에게 퍼피워커란, 이씨와 서윤양에게 화담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씨는 "화담이에게 저는 1년 동안 세상의 많은 곳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었다고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너무 멋진 셋째죠"라고 했다. 서윤양도 "제게 화담이는 귀여운 동생이에요. 화담이에게 저는 매일 뛰라고 시키는 존재일 거예요"라며 웃었다. 최민석 기자

퍼피워커가 말하는 안내견의 의미는 뭘까. 이씨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중요한 점을 짚었다. 그는 “그냥 길 가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선뜻 도움을 주거나 말을 걸기는 누구나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귀여운 강아지라는 매개체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분들 입장을 이해하거나 돕는 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이 무리 없이 군중과 섞일 수 있도록 하는 ‘브릿지’ 역할을 안내견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서윤양도 한가지 소망을 덧붙였다. “안내견과 퍼피워커가 더 많이 알려지고 인식이 달라져서 어디서든 ‘어서 오세요’ 해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 퍼피워커와 예비 안내견 화담이의 이야기



문지연 기자, 촬영·편집=최민석 김다영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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