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한국은 나를 50년간 잊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에 춘천에서 학생들엑 영어를 가르쳤던 21세의 자원봉사자 산드라 네이선의 수업 당시 사진. 뉴욕타임즈 캡처.

1960년대 한국의 빈곤을 말할 때 흔히 보릿고개가 등장합니다. 당시 한국은 5~6월이면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온 가족이 식량 걱정을 하며 살았죠. 구황작물로 끼니를 때우기도 벅찬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배움도, 생계도 어렵던 한국에 21살 미국 대학생이 발을 디딥니다. 바로 올해 75세가 된 할머니 샌드라 네이선(Sandra Nathan)씨입니다. 네이선씨는 1966년부터 68년까지 2년간 춘천여고에서 미국 평화봉사단 소속 영어교사로 근무하며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1966~81년 한국에는 네이선씨를 포함한 약 2000여명의 미국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들이 교사 등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한국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를 도와준 네이선씨를 잊지 않았습니다. 네이선씨의 봉사 이후 52년 만인 지난달 초 네이선씨 집에 아주 특별한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한국이 보낸 ‘코로나19 생존키트’였습니다.

산드라 네이슨씨가 외교부 소속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받은 받은 코로나19 생존키트. 뉴욕타임즈 캡처.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보건용 마스크 등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는데요. 이를 고려해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난 10월 네이선씨를 포함해 50여년 전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찾았던 514명에게 KF마스크 등이 들어있는 방역품 세트를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네이선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구호품 상자를 보자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내 건강을 염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상자에는 마스크 외에 장갑, 피부관리용품, 인삼캔디, 비단 부채, 그리고 한국 전통 거북 디자인이 들어간 은 젓가락과 숟가락 2세트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한국에서 자원봉사했던 추억을 털어놓았습니다. 네이선씨는 “거리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였고, 겨울에도 아이들은 맨발에 코트도 입지 않고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고 60년대 춘천을 기억했습니다.

네이선씨는 “당시에 가르치던 학생 중 한명이 장에 기생충이 생겨 고생했다. 가난하고 병약해 끙끙 앓기에 미 군의관에게 그 아이를 데려갔다. 이후 학생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는 나에게 달걀 몇 개를 선물해주고 갔다”며 “알을 낳은 지 얼마 안 됐는지 온기가 남아있었다. 깃털 붙은 따뜻한 달걀에서 그 사람들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거의 울 뻔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이어 “사실 이 특별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상자가 도착하고도 1주일 동안은 상자를 뜯지 않았다. 나는 마법을 안 믿는 사람인데 이 키트 박스 안에는 마법의 기운이 들어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미국 평화봉사단은 과거 한국이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한국을 찾아 보건과 방역, 교육 발전에 도움을 줬다”며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봉사단원들에게 한국이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키트를 보낸 이유를 밝혔는데요.

네이선씨의 사연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한 누리꾼이 남긴 댓글도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70세의 한국인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기사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나도 한국에서 그 힘든 시간을 살아왔다”며 “우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미국 국민, 군 복무자, 평화봉사단, 미국 정부에 감사드린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 50년 만에 고속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도움을 주는 위치가 되기까지 우리를 폐허에서 일으키기 위해 많은 손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진짜 부국이 된다는 건 그 마음을 기억하는 일일 겁니다. 우리를 이끈 손길을 잊지 않고 우리 뒤의 누군가에게 같은 손길을 내미는 마음. 그렇게 대한민국은 오늘도 한발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송다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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