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단어만 봐도 메슥” 대구 신천지 탈퇴자들의 회한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①코로나가 할퀸 상처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지난해 3월 2일 오후 경기 가평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중 사죄의 큰절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5213명. ‘신천지증거장막(신천지)발 집단감염’은 코로나19가 확산된 지 1년이 된 현재까지도 규모가 가장 큰 집단감염 사례로 남아 있다. 지난해 2월 신천지 첫 확진자인 ‘31번째 환자’가 대구 남구 신천지 집회장을 두 차례 방문한 이후 전염병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교주로 알려진 이만희(90) 총회장은 취재진 앞에서 사과했지만 신도 및 집회장 명단 고의 누락 등의 의혹을 받고 재판에 넘겨져 선고를 앞두고 있다.

국민일보는 10일까지 집단감염 이후 ‘대구 신천지’를 탈출한 사람들을 만났다. 새 삶을 시작했지만 일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탈퇴자들은 공통적으로 “한동안 누구에게도 신천지에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면서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했다.

신천지 대구 집회장 3층에서 1년 동안 숙식했던 이가영(가명·28·여)씨는 지난해 2월 18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간부 한 명이 “왜 아직도 여기 있느냐”며 이씨의 손을 잡고 뛰었다.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건물 밖은 취재진의 카메라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휴대전화만 쥔 채 집회장 뒷문으로 빠져나온 이씨가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 몸을 피할 곳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그러나 집도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짐은 어디 두고 그 차림으로 왔느냐”는 부모님 말에 아무 말 없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체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그러나 곧 신도 전체 대상의 코로나 검사가 시작되면서 가족들도 이씨가 ‘신도 명단’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병을 옮길까 두려웠다”면서 “(신천지 신도임이 들통났을 땐) 존재 자체가 잘못된 잉여인간 같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새 삶을 시작할 때도 불안함은 탈퇴자들을 옥죄었다. 지난해 3월 탈출 직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조지훈(가명·27)씨는 아직도 ‘명단’이라는 단어만 보면 메스꺼움을 느낀다. 공무원 중에서도 신도 명단에 포함된 확진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학원가에서는 ‘신도 명단에 있는 사람은 임용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조씨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 인사혁신처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몇 번이나 입력했는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가영씨는 탈퇴 후 국비로 지원되는 동영상 편집자 교육을 받았다. 교육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이씨는 신천지 탈퇴자임을 밝혔다. ‘백수 탈출하겠다’ 등 가벼운 소개가 이어지던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았다. 이씨는 “20대 내내 신천지에만 있었는데 신천지를 빼면 나를 소개할 소재가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소개 후 사람들이 은연중에 꺼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의심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그의 스마트폰에는 ‘신천지 포교를 경험한 적이 있다’ ‘힘내서 같이 취직하자’는 메시지 10여건이 와 있었다. 국비지원 교육 후 가영씨는 서울로 이사해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3월 신천지에서 나온 손만숙(가명·64·여)씨는 한 목사의 도움으로 기초수급 신청을 한 뒤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손씨는 “신천지 생활로 남은 건 가족과 동떨어져 혼자 남겨진 삶뿐”이라며 “기초적인 복지제도도 몰랐는데 신천지 밖에서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신천지 탈퇴자들을 상담한 전문가들은 ‘코로나 신천지 탈퇴자’들이 기존 탈퇴자들과는 특성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탈퇴자들을 상담하고 있는 정민철 청년회복청춘반환지원센터 대구지부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에는 3년 이상 ‘열성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와 상담받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몸담은 기간이 오래됐을수록, 높은 직급일수록 더 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탈퇴자 출신으로 상담을 돕고 있는 안지원(가명·21)씨도 “탈퇴자 모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을 호소하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혼란에 빠지는 기간이 길다”고 덧붙였다.

포교를 위한 집단합숙 등을 하다 탈퇴한 경우에는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증상이 심한 탈퇴자 일부를 진료하는 한 정신과 전문의는 “더 이상 사람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증상이 가장 많은데, 이럴 땐 비슷한 처지의 탈퇴자들을 만나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천지 총회 본부가 지난 7일 신도들에게 배포한 성명. 총회본부는 선고를 앞둔 이 총회장이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말론사무소 제공

지난해 신천지 내부에서는 집단감염 이후 추가 탈퇴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직전 자체 추산 전체 23만여명, 대구 1만3000여명에 달했던 신도 규모는 집단감염 이후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다. 총회 본부는 지난 7일 내부 성명을 통해 “배신자들과 하나 되어 신천지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며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신천지 수장 이만희 총회장은 집단감염 이후 방역 당국에 협조하지 않고, 증거를 인멸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뒤 지난해 11월 보석이 인용됐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미경)는 13일 이 총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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