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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구조됐다면 우린 잘 키웠을까요? 민망한 국가 양육 [이슈&탐사]

[바뀐 법, 제2의 정인이 구할 수 있을까] ③·끝 구조 이후 신경쓰지 않는 국가

한 시민이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3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찾아 정인양을 추모하고 묘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서울의 A아동청소년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 사는 학대피해아동 현준(가명·13)이는 2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아이는 그룹홈에 올 때부터 폭력 성향이 짙었다. “엄마 아빠도 이랬다”며 보육사들을 자주 때렸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그런 줄 알았다. 부모에게 맞고만 자라서 정상적인 관계 맺음을 모르는 거로 여겼다. 증세가 심상치 않아 뒤늦게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미 정신질환이 진행 중이었다.

현준이는 5년 전 8살 때 긴급 구조돼 학대아동피해쉼터로 왔었다. 쉼터는 긴급분리를 위한 시설이어서 대개 1년 미만 정도만 머문다. 하지만 현준이는 2년 넘게 그곳에서 지냈는데도 이런 증상을 치료받지 못했다. 구조 전부터 복용했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약만 제공받았다. 그런 현준이를 선뜻 받아주겠다는 곳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그룹홈이 현준이를 들였다.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아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쉼터는 이를 발견하고 치료할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라는 결정은 국가가 양육의 책임을 대신하겠다는 의미인데, 그 역할은 소홀하다.

현준이는 뒤늦게라도 약 복용을 시작해 상태가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은 폭력 성향이 곧잘 튀어나온다. 같이 지내는 5명은 그런 모습을 보며 겁에 질려 했고, 때로는 닮아 갔다. 이들도 대부분 학대피해 아동이다. 보육사들은 그럴 때마다 몸으로 막았다. 할퀸 자국이 아물기가 무섭게 다른 상처가 생겼다. 현준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을 수소문해봤지만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시설은 마련돼 있지 않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원가정 복귀도 논의했었다. 하지만 친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키울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친모도 조현병 치료를 받고 있고, 지적장애 진단도 받았다. 경제적 능력도 여의치 않다. 정부는 원가정 복귀를 위한 부모 관리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결국 A그룹홈은 현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냥 맡아 키워야 한다. 비슷한 경험을 벌써 세 번이나 했다. 지적장애아로 7살에 입소했던 한 학대피해아동은 올해 성인이 돼 독립을 준비 중이다.

그룹홈에서는 시설장 1명과 보육사 2명이 24시간 상주하며 아이 6~7명을 돌봐야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신경 써야 할 일은 2~3배 늘어난다. 상황이 이런데도 A그룹홈은 매일같이 쉼터나 지자체, 경찰로부터 새로운 아이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정원이 7명인데 6명밖에 없지 않느냐, 한 명 더 받아 달라’는 것이다. 쉼터가 포화상태라서 그렇다.

학대 부모 때문에 빚지는 아이들
정인이가 구조됐더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수사로 학대가 밝혀져 양부모가 처벌받고, 법원이 장기보호(원가정 복귀 불가) 결정을 냈다면…, 이런 가정(假定)을 들을 때마다 활동가들은 복잡한 심경이 들어 한숨이 새 나온다. 구조된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에 정부는 그다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대피해 아동 준호(가명)·준우(가명) 형제는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아이들은 5살, 3살 때 위탁가정에 맡겨졌다가 B그룹홈으로 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형제들 이름으로 신용정보회사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명의의 휴대전화가 개통됐는데 요금을 연체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용도 하지 않은 휴대전화 요금 독촉장은 4년 동안 쌓였다. 명의가 도용된 것으로 생각한 그룹홈 원장이 아이들 손을 잡고 경찰서를 찾았다. 그런데 경찰은 고소·고발이 어렵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명의를 가져다 쓴 게 친권자인 것 같은데요. 통신사에 직접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통신사에 연락해 휴대전화 사용자를 조회했더니 범인은 엄마였다. 아이들은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원장 부탁으로 신용정보회사는 독촉장 발송을 멈췄지만 아이들 앞으로 남겨둔 휴대전화 요금 수십만 원은 그대로 남았다.

그룹홈 원장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 빚을 아이가 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년이 돼 자립하려는 순간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라며 “이런 사례는 양육시설과 그룹홈에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B그룹홈에 사는 아이 중 절반 이상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근에는 한 아이가 학대 피해로 입소했는데,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그룹홈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 통장에 있는 돈은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아이도 준호·준우 형제처럼 부모가 아이 앞으로 휴대전화를 개설해서 요금을 연체한 케이스다. 그룹홈 관계자들이 가입을 해지했는데, 얼마 전 또다시 새로운 휴대전화가 개설됐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연체가 돼서 하나를 막았는데, 또 개설하도록 놔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통신사에 따졌더니 본인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어서 개설해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법이 너무 허술하고 불합리한 거잖아요. 이렇게 애들 앞으로 빚이 백만원 가까이 쌓여요.”

아이의 수급비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학대 가해자인 부모에게 연락해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룹홈 관계자는 “원래는 주거래은행에 공문을 보내 (피해아동의) 통장을 개설했는데, 지난해 개인정보법이 강화된 뒤로는 학대한 부모님께 부탁을 해야만 했다”며 “국가가 아이들을 그룹홈에 의뢰할 때부터 아이 통장을 개설해주는 등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학대 부모에게서 피해 아동을 분리해도 친권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있어서다. 이런 문제가 쌓여가도 국가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신수경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원칙적으로는 친권 제한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례로 법원에서 친권을 제한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읍소하러 다니는 보육사
구조된 아이들은 사회의 관심 밖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분리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 그 수급비 수십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내야 한다. 후원금 없이는 학원에 다니기도 버겁다. 학대로 인해 발달이 지연되거나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이 많지만 정부는 이런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듯했다.

학대 피해아동을 위한 치료나 교육 지원은 민망한 수준이다. 정부가 그룹홈에 지원해 주는 건 시설운영비 33만6000원과 종사자 인건비 정도다. 결국 먹고 사는 것 외의 다른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룹홈 종사자들이 동분서주하며 읍소하고 다녀야 한다.

학대피해아동 지현(가명·15)이는 쉼터에서 경계선 지능아동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룹홈에서 지켜보니 날 때부터 지능이 낮은 게 아닌 듯했다. C그룹홈 보육사는 “지능이 낮으면 수 계산과 암기력에 한계가 있는데 지현이를 보면 암기도 되고 사칙연산도 가능하다”며 “학대를 당한 아이 중에는 환경이 발달을 늦추거나 지적능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 같았다”고 말했다.

지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원가정 복귀가 힘든 상태다. 성인이 됐을 때 평범하게 살아가려면 교육과정이라도 정상적으로 끝마쳐야 했다. 그룹홈은 아이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그동안 뒤처진 영어 학원과 수학 학습지를 우선 끊었다. 하지만 돈이 빠듯하다 보니 보육사가 학원 선생님을 찾아가 학원비를 깎아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시설에 사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아 조카라고 둘러대며 사정했다. 다른 수단은 없다. 마음의 치료는 지자체나 그룹홈협의회 사업공고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현이는 운이 좋게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모래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사업이 종료되면 치료는 중단된다.



그룹홈은 전국에 507곳(2019년 말 기준) 있다. 그룹홈은 사실상 원가정 복귀가 힘든 장기보호 대상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어서 10년 이상 지내는 사례가 많다. 국가가 부모 역할을 다 해줘야 하는 아이들이다. 이준섭 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사무국장은 “학령기 때 특기나 학업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부분을 지원해줘야 잘 성장을 할 텐데 지원해줄 수 있는 재원이 없다. 양육 이외의 심리 치료 서비스 부분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선생님들이 자기 시간 쪼개서 후원처를 따내고 치료 사업을 신청하는데 그러면 업무량이 많아져 양육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룹홈 보육사들은 월 200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호봉제가 인정되지 않아 수십 년을 일해도 똑같다.

학대는 아동복지의 총체적 문제
형우(가명)는 2년 전 D그룹홈에 들어왔다. 다문화가정이었는데, 부부싸움이 잦았고 때때로 폭력도 휘둘렀다. 상한 음식을 자주 먹일 정도로 방임·방치가 심각했다. 아보전 등 기관은 해당 가정에서 아이들이 사는 건 어렵다고 보고 아이들을 분리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구출해놓고 보니 그 지역 쉼터에 자리가 없었다. 보호할 곳을 수소문하다 일반 청소년 시설에서 사흘을 보냈다. 긴급 구조된 아이들은 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며 부모와 떨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 듣고, 앞으로의 상황 등도 배운다. 하지만 형우는 그럴 기회가 없이 곧바로 그룹홈으로 옮겨졌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며 3개월을 매일 같이 울었다. 그룹홈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부모와 분리되는 트라우마를 달래주느라 무던 애를 써야 했다.


정인이가 1차 혹은 2차 신고 때 구조됐다면 비슷한 일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기준 전국에 운영 중인 쉼터는 71곳, 총 정원은 477명에 불과하다. 반면 학대 신고 건수는 4만1389건에 달했다. 정원이 훌쩍 넘는 756명의 아동이 쉼터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 형우처럼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그룹홈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아보전 관계자는 “이미 쉼터 시설이 모두 포화상태다. 너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애들이 복도에서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분리 보호가 절실한 경우여도 갈 곳이 없어 원가정에 방치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정부는 올해 쉼터를 91곳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격리는커녕 분리조사 원칙을 지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아보전과 쉼터 등 시설 관련 재원은 복지부 일반 회계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과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온다. 늘리기도 쉽지 않고 한정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숙 박사는 “아동학대 이슈를 들여다보면 한국 아동복지의 총체적인 문제가 모두 드러난다”며 “친권 중심의 국민 정서도 바뀌어야 하고 국가가 아이를 키운다는 인식으로 정부는 아동복지 예산 및 제도 보강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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