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뒹굴뒹굴… 게임만 늘어요” 11살 영준이 ‘망가진 일상’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③ 코로나가 드러낸 소외의 민낯



“집에 있으면 주로 누워 있거나 하루종일 바닥에서 뒹굴거려요.”
“작년에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은 콘플레이크! 엄마가 아침으로 먹으라고 사놨는데 간식으로도 먹고 수시로 먹다 보니까 제일 자주 먹는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강타했던 지난해 11살 영준(가명)이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영준이가 혼자 집에 있는 동안 주로 한 일은 ‘누워 있기’였다. 함께 사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출근하고 나면 영준이를 돌보거나 놀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평일에는 낮에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 갈 수 있지만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누워 있거나 휴대전화만 갖고 논다. 그러는 사이 ‘배틀그라운드’ 하나만 할 줄 알았던 영준이는 주로 하는 게임이 4가지로 늘었다. 지난달에는 아버지가 “게임 좀 그만하라”며 영준이 눈앞에서 휴대전화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영준이를 비롯한 저소득층 아동 상당수가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을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늘며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 복지관 운영이 중단되면서 문화생활과 여가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학력 저하와 정서 불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교류하던 공간을 잃어버렸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9살 지은(가명)이는 놀이터에서 매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어느순간부터 ‘엄마가 못 나가게 한다’며 하나둘씩 놀이터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지난해는 친구 집에 한 번도 놀러가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이전까지는 수학학원, 미술학원 등 학원도 이따금 다녔지만 가계 여력이 없어지면서 학원은 끊고 학습지 구독만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일부 아이들은 집에 PC가 없거나 조작 방법을 알려줄 어른이 없어 비대면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은이네 학교는 지난해 내내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대면 수업을 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친구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도 거의 매일 학교에 가야 했다. 지은이네 집에 원격수업을 들을 수 있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수업은 들을 수 있었지만 진도를 체크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봐주는 선생님이 없어 수업을 열심히 안 듣게 된다”며 “출석체크도 따로 안해 종종 늦게 가기도 한다”고 했다.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닐 여력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학습 보조를 해줄 사람이 없어 장기적으로 학력 저하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지역 대학생과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서울 관악구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지난해는 멘토링이 다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멘토 대학생과 직접 만나 수업하는 게 거의 없었다”며 “보통 대학생 봉사자들이 아이들의 진도를 체크하고 부족한 공부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사회복지사들이 학습 지도까지 다 맡으려니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코로나19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실태조사' 중 코로나19 이후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이 어른 없이 집에 혼자 있는 일수, 함께 있는 형제 및 자매 연령대. 해당 설문조사는 지난해 8월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 98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희망친구 기아대책 제공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은 늘어난 상황에서 보호자의 근로시간도 늘어나 보육공백을 경험한 가정도 적지 않다. 지은이는 원래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학교 돌봄교실에 다녔지만 지난해 7월부터는 돌봄교실 대신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엄마가 원래는 낮에 돌아와 점심밥을 챙겨줬지만 지난해부터는 퇴근시간이 많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지은이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저녁까지 먹고 귀가하거나 때로 더 늦게까지 머물기도 한다.

코로나19가 덮친 가계의 경제적 위기는 아이들의 영양 저하에도 반영됐다. 영준이는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며 혼자서 밥을 챙겨먹는 날이 늘었다. 계란을 굽거나 감자를 익혀 밥에 비벼 먹기도 하지만 대개 라면 등 혼자서 조리할 수 있는 간단한 식재료나 인스턴트식품 위주다. 야간 배달기사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원래 오전 2~3시쯤 집에 돌아와 영준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아버지의 일이 급격히 늘어 귀가 시간이 한두 시간씩 계속 늦춰졌다. 요즘은 아침 10~11시쯤 귀가해 3시간 정도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일하러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코로나19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실태조사' 중 코로나19 이후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의 하루 중 스마트폰 사용 시간 변화. 해당 설문조사는 지난해 8월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 98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희망친구 기아대책 제공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는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교육이나 여가를 누리지 못하는 사이 휴대전화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는 모양새다. 9살 수민(가명)이도 지난해부터 휴대전화로 하루 10개 가까운 짧은 동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수민이는 “휴대전화로 가장 많이 쓰는 어플은 ‘틱톡’”이라며 “가끔 어린이가 보면 안 되는 영상이 추천영상에 뜨기도 한다”고 전했다.

가족 간 다툼이나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도 부쩍 늘었지만 아이들은 어디에 호소하고 의지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듯 했다. 지은이는 “지난해 친구 한 명이 나를 따돌려 힘들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수민이도 “지난해 할아버지가 일을 나가셨다가 다치신 적이 있는데 삼촌이 ‘왜 일하러 가시냐’며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싸운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돌봄 기능을 해온 복지기관들도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센터와 연계해 저소득층 아동 대상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지난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된 동안 휴관하는 기관이 많았고 워크숍 등 행사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됐다”며 “꼭 필요한 돌봄이나 체험 프로그램의 경우 인원을 축소해 진행하거나 온라인·오프라인을 병행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올해도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 채 막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은이는 “지난해는 가족과 여행이나 나들이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며 “코로나가 풀리면 친구 집에 놀러가 강아지랑 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지역아동센터에서 당일치기 캠프를 한 번 간 것이 나들이의 전부였던 지은이는 코로나19 사태가 해소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수민이도 “코로나가 끝나면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싶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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