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여기는 베이징] “구름 위의 말이 떨어졌다”…‘마윈 사태’가 남긴 것들

‘천하의 마윈이라도 선 넘으면 이렇게 된다’ 메시지
마윈 행방 여전히 오리무중
SNS에 명언·미담 대신 ‘자본가 민낯’ 비판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디지털 기술과 포괄적 성장’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신화뉴시스

중국 금융당국의 후진성을 공개 비판했다가 괘씸죄에 걸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마윈이 지배주주로 있는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이 당국의 요구대로 사업 개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앤트그룹은 사업 비중이 큰 소액 대출 등에서 손을 떼고 본연의 지불 결제 업무에 주력하게 될 전망이다.

마윈은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 와이탄 금융서밋 기조연설 이후 석 달 가까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17일 중국 인터넷상에선 그가 지난주 홍콩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거나 남부 관광지 하이난 싼야에서 목격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이 나돌았다. 중국에서 ‘재계의 신’이자 ‘작은 거인’으로 추앙받던 마윈은 중국 당국의 표적이 됐고 명성도 빛이 바랬다.

앤트그룹, 사업 개편 추진…다음 수순은 ‘데이터 공유’

이번 사태는 마윈의 ‘입’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가 문제의 상하이 행사에서 “중국 국영은행이 전당포 영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게 시발점이 됐다. 이 자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인 왕치산 부주석을 비롯해 이강 인민은행장 등 공산당 지도부가 참석했다.

마윈은 그로부터 9일 뒤 중국 4대 금융감독기관의 예약 면담에 불려갔다. 말이 면담이지 군기 잡는 자리다. 예약 면담 후 마윈에게 취해진 조치는 알려진 대로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로 주목 받았던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증시 동시 상장이 무산됐다. 알리바바 주가가 폭락하면서 마윈의 재산도 두 달 사이 약 120억달러(약 13조원) 넘게 증발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앤트그룹 경영진을 소환해 5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그중 핵심은 ‘지불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불공정 경쟁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지난해 6월 기준 앤트그룹의 사업 중 소액 대출 및 재테크·보험 상품 판매 비중은 60%가 넘는다. 이걸 접으라는 얘기다.

앤트그룹은 전방위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사업 개편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천위루 중국 인민은행 부행장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앤트그룹이 금융 당국의 지도하에 이미 규범 정비 업무팀을 만들고 사업 개편 일정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만간 구체적인 사업 개편안이 나올 전망이다. 중국 당국은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가라도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마윈 손보기에 나선 중국 당국이 진짜로 노리는 건 앤트그룹이 보유한 소비자 신용 정보라는 게 정설이다. 앤트그룹은 10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앱 ‘알리페이’를 통해 고객의 소비 패턴, 대출 및 상환 이력 등에 관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달 초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앤트그룹이 2015년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한 뒤 3년 만에 인민은행도 개인 신용정보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인민은행은 앤트그룹과 텐센트 등에 소비자 정보 공유를 요청했으나 앤트그룹이 거부해 무산됐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앤트그룹의 운명이 중국 당국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만큼 마윈도 정보 공유 요청을 그냥 넘기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많다. 앤트그룹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인민은행이 운영하는 전국 신용보고시스템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인민은행이 통제하는 신용등급회사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미 여론 조성에 나섰다. 중국 인공지능개발전략연구소의 리우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빅데이터는 앤트그룹과 같은 인터넷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러한 자산을 무료로 공유하는 건 기업에는 큰 희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체가 발전하고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간 데이터 공유 메커니즘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인의 일상 생활을 지배하는 기술 기업 시장을 규범화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며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인터넷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동안 규제에 손을 놓고 있던 중국 정부가 뒤늦게 관련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마윈은 어디에

지난 1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알리바바 본사 인근에 있는 마윈의 오래된 아파트에 블룸버그통신 기자가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통신 홈페이지 캡처

마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4일 저장성 항저우의 알리바바 본사와 인근에 있는 마윈의 오래된 아파트, 단골 술집 등을 찾았지만 그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통신에 따르면 마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았던 술집에 지난해 말 이후로 오지 않았고 아파트에도 한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문 옆에는 ‘행운이 찾아왔고 지금부터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적힌 중국식 걸개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1995년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 차이나옐로페이지를 창업한 마윈은 4년 후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를 만들어 중국 최고의 기업으로 키웠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마윈은 영웅이자 롤모델이었다. 그러나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여론만 놓고 보면 마윈에 대한 평가는 많이 바뀌었다.

중국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 마윈을 검색하면 ‘자본가의 추악한 모습’ ‘개인 비리를 파헤쳐야 한다’는 류의 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마윈이 과거에 남겼던 명언이나 미담이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한 네티즌은 “마윈은 ‘천하에 어려운 장사가 없게 하라’고 했는데 결국 그는 혼자 온 천하의 장사를 다 해 다른 사람들이 흥정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마윈의 윈이 ‘구름 운’인 것에 빗대 “구름 위의 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표현한 이도 있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여기는 베이징]
[여기는 베이징] 시진핑 “CPTPP도 가입”… 중국이 다자주의 리더로?
[여기는 베이징] 유럽과 밀착하는 중국…걸림돌은 ‘인권’
[여기는 베이징] 中·英 ‘방송 전쟁’…면허 취소에 방송 금지로 맞불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