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묘소 앞 어느 할머니의 시와 설빔 “아가야”[전문]

한 할머니가 정인이를 위해 만든 옷과 버선. 오른쪽은 할머니가 쓴 시. 최수진씨 제공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의 묘소에 남겨진 한 할머니의 편지가 네티즌을 울렸다. 이 할머니는 편지와 함께 정인이를 위한 설빔까지 손수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정인이를 위한 어느 할머니의 시’라는 제목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네이버 카페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인 최수진(41)씨가 촬영한 사진이다. 협회는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과 법원 진정서·탄원서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는 등 정인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온 곳이다. 최씨가 이 사진을 카페에 올린 후 여러 네티즌을 통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로 공유됐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시에 “감동적이다” “마음이 아프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최씨는 2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정인이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할머니의 시를 보고 너무 눈물이 나 공유하게 된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최씨는 정인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시민들의 선물을 정리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묘소에 어지럽게 쌓인 물품을 가지런히 놓고, 일부는 수목장 내부에 마련된 공간으로 옮기는 식이다. 그는 사진을 찍은 날도 회원들과 함께 정인이 묘소를 정리하던 중 할머니와 만났다고 했다.

선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정인이 묘소. 최씨 제공

시민들이 선물이 보관된 수목장 내부 공간. 최씨 제공

최씨는 “17일 오후 4~5시쯤 할머니 두 분이 한 아름 상자를 들고 오셨다”면서 “제가 정리하는 동안 기도를 하고 계시다가 물품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셨고 나중에 기관을 통해 기부될 예정이라고 답해드렸다”고 말했다. 설명을 들은 할머니들은 자신의 물품도 기부해 달라며 들고 온 상자를 보여줬다고 한다. 상자 속에는 등불과 고운 옷이 들어있었다.

최씨는 “정인이가 하늘나라에 갈 때 어둡지 말라고 등불을 가져오셨다고 했다”면서 “닷새 동안 꼬박 만드신 옷과 버선까지 준비해 오셨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의 편지는 코팅해서 묘소에 가져다 놓았고 옷과 버선은 기부 물품과 분리해뒀다”며 “(묘소에) 보관할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만든 설빔. 최씨 제공

할머니가 작성한 시의 제목은 ‘정인이의 설빔 때때 옷’이다. 시에는 “아가야 할머니가 미안해”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등 정인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할머니는 “한 번도 소리 내 울어보지 못했을 공포 속에 온몸 다디미질을 당했구나”라며 “췌장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아가야 어찌 견디었느냐”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푸른하늘 한 조각 도려내어 내 손녀 설빔 한 벌 지어 줄게. 할머니 품에 언 몸 녹으면 따뜻한 죽 한 그릇 먹고 가거라”면서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할미 천사 옷 입고 가야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사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제 ‘정인이 왔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볼 수 있으니 또박또박 정인이라고”라며 “아가야! 너를 보면 이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할머니의 편지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친손녀 부르듯이 말씀하시는 게 느껴진다” “할머니가 지으신 옷은 편지와 함께 보관되면 좋겠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최씨는 “이런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단순히 분노와 슬픔으로 끝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면서 “모두가 납득할 만한 처벌이 내려지고, 앞으로 정인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시스템 마련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시 전문

정인이의 설빔 때때 옷
-○○○ 할머니가-

아가야
할머니가 미안해

친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아빠 다
어디들 있는게냐?

한번도 소리내어 울어보지 못했을
공포 속에 온 몸 다디미질을 당했구나

췌장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아가야
어찌 견디었느냐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푸른하늘 한조각 도려내어
내 손녀 설빔 한벌 지어 줄게!

구름 한줌 떠다가
모자로 만들고

정인이 눈을 닮은 초승달
꽃신 만들어

새벽별 따다가
호롱불 밝혀 주리니

손 시려 발 시려
온 몸이 얼었구나

할머니 품에
언 몸 녹으면
따뜻한 죽
한 그릇 먹고 가거라

지리산 호랑이도
새끼를 잃으면
할머니 울음을 울겠지

아가야 아가야
세상이 원망스러워도
뒤돌아 손한번
저어 주고 가려므나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할미
천사 옷 입고 가야지

천사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제

정인이 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 볼 수 있으니
또박 또박
정인이라고…

아가야!
너를 보낸 이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

2021.1.17 (일요일)
-과천에서 할미가-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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