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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의 전설’ 래리 킹, 코로나19 치료 중 사망


오랜 시간 라디오와 텔레비전 진행자로 활약하며 ‘인터뷰의 달인’ ‘토크쇼의 전설’로 통했던 래리 킹이 23일(현지시간)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킹이 공동 설립한 오라 미디어는 성명을 통해 그가 이날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어스 사이나이 의료센터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킹은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라 미디어와 유가족 측은 그의 사인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킹은 1933년 뉴욕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UPS 택배기사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어릴 적부터 라디오 진행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온 킹은 1957년 플로리다주의 작은 방송국에서 방송계에 입문했다. 방송국 측은 그의 본명 ‘로런스 하비 자이거’가 어렵다며 예명 ‘래리 킹’을 부여했다. 이 이름으로 인기를 얻자 2년 후 정식 개명했다.

킹이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건 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맡으면서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 간 총 6120회 방영된 토크쇼는 CNN의 가장 인기 있고 오래 지속된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킹은 방송계 입문 후 63년 동안 리처드 닉슨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모든 전·현직 미국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빌 게이츠 등 유명인사와 평범한 일반인 시청자까지 5만여명과 인터뷰를 가졌다.

킹은 본인을 언론인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의 인터뷰는 자주 정치적 화제에 올랐다. 1992년 대선 당시 제3 후보로서 돌풍을 일으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는 킹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를 깜짝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태도는 공격적이지 않았다”며 “그는 출연자가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권자라도 거칠거나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출연자가 자기 관심사를 스스로 풀어내도록 이끄는 쪽을 선호했다”고 평가했다.

킹의 개인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 7명과 8차례 결혼했고 자녀 5명을 뒀다. 도박 중독 탓에 두 차례나 파산 선언을 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심장마비, 당뇨, 협심증, 폐암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1987년 심장 수술을 받은 일이 계기가 돼 가난한 사람의 심장 치료를 돕는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지난해 자녀 중 2명이 각자 앓던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나면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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