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쇠지렛대 들고 담을 넘었습니다”

제주의 다세대 주택 1층에서 발생한 화재. 최선호씨 제공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주도 화재사고’라는 짤막한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용감한 시민 덕에 긴박했던 주택가 화재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국민일보는 해당 글의 당사자를 수소문한 끝에 그 이야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제주 조천읍에 거주하는 최선호(40)씨였습니다. 그는 23일 오전 제주 화북의 사업장에서 아내와 함께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 뭔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건 오전 9시45분쯤 알게 됐습니다. 밖에서 거뭇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아, 불이 났구나.” 그는 직감했습니다.

최씨는 바로 옆에 있었던 아내 송명선(41)씨에게 119 화재 신고를 부탁하고는 밖으로 나가 살펴보았습니다. 연기가 올라오는 곳은 사업장 뒤의 다세대 주택 1층이었습니다. 우선 인명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최씨는 침착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가게에 있던 소화기와 쇠지렛대를 챙겨 나섰습니다.

23일 오전 9시 45분쯤 화재 연기를 발견한 최선호(40)·송명선(41) 부부. 최선호씨 제공

담을 타고 뒤편 빌라로 넘어간 최씨는 쇠지렛대로 방범창을 두드렸습니다. 그래도 인기척이 없자 그는 바로 현관으로 향해 혹시 사람이 있는지를 한번 더 확인했죠. 이동 도중 노출형 가스통 가스 밸브를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번져 가스통이 터지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테니까요.

이후 최씨는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빌라 입구를 나오니 창문은 열에 의해 깨져 있었습니다. 그는 소화기를 이용해 깨진 창문 사이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습니다. 빌라 뒤편도 창문이 터져 불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건네받은 차량용 소화기까지 써야했죠.

최씨가 분투한 약 7분 후 다행히 화북119센터에서 소방관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이날의 ‘명예소방관’ 최씨와 소방대원들 덕분에 화재는 인명 피해와 화재 확산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출동한 화북119센터 소방대원들. 최선호씨 제공

최씨에게 침착한 용기의 비결에 대해 물어보니 그는 3개월 전쯤부터 조천읍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슬쩍 밝혔습니다. 이어 “다들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며 “소화기만 가정에 잘 비치되어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멋쩍어하며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소방관님들이 정말 빨리 와주셨다”며 그들에게 공로를 돌렸습니다.

화북 119센터 관계자는 “화재 시 신속한 신고 후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시민분의 도움 덕에 화재진압에 무사히 성공했다”고 전했습니다.

최씨가 슈퍼맨처럼 불길 치솟는 대형 화재를 진압한 건 아닙니다. 그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화재는 소방관들에 의해 금방 잡힐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위험하다는 생각만으로 달려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최씨 같은 마음들이 모여 공동체는 안전해지는 것이겠죠.

최씨에게 자신의 선행을 알린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제주도에도 마음 따뜻한 일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좋은 일은 부끄러워 말고 널리 알리고 자랑할 일입니다. 서로 누구의 선행이 더 아름다운지 뽐내고 자랑하는 사회가 되면 세상은 훨씬 따뜻해지겠죠. 그의 바람처럼 우리 주위의 숨은 영웅들이 더 많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원해 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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