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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할머니가 엄지척을 했습니다”

김정오 경위(36)와 박준오 경장(35)은 지난 12일 길 잃은 청각장애인 할머니를 야탑지구대로 모셔와 종이와 펜으로 소통했다. 분당경찰서 제공

코로나19로 가뜩이나 더 춥고 외로웠던 지난 설 명절. 여러모로 마음 쓰이고 괜히 쓸쓸하지는 않으셨나요. 코로나에 귀향은 어려워졌지만 보고 싶은 애틋한 마음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법이죠. 그리운 이를 보고자 불편한 몸으로 어려운 길을 나선 박모 (67)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지난 12일 설 명절 당일. 분당경찰서 야탑지구대 김정오(36) 경위와 박준오(35) 경장은 오전 9시쯤 관내 순찰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시는 박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죠. 할머니는 순찰차를 보고 도와달라는 손짓으로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대화를 시도한 두 경찰관은 할머니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경장은 2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말씀을 잘 못 알아들어 외국인이신 줄 알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해왔습니다. 두 사람은 할머니를 바로 지구대로 모시고 왔습니다. 말 대신 종이와 펜을 이용해서 열심히 의사소통을 시작했죠.

할머니는 ‘1501번’이라는 글자를 적어 내렸습니다. 아마도 버스 노선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두 경찰관이 알아본 결과 인근에 1501번 버스가 없었습니다. 고민에 빠진 경찰들 앞으로 할머니는 ‘추모공원, 남편 김00’라는 메모를 건넸습니다. 정확한 힌트 덕에 경찰관들은 할머니가 남편을 보기 위해 추모공원에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추모공원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경찰관을 향해 '엄지척'을 해주시는 박할머니. 분당 경찰서 제공

박 경장은 “막막하긴 했지만 남편 분 이름이랑 생년 정도만 알면 한번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분당 주변 추모공원 3곳의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박 할머니의 남편인 김모 할아버지의 묘를 수소문했습니다.

확인 결과 할아버지의 묘는 경기 광주 오포읍 소재 추모공원에 있었습니다. 김 경위와 박 경장은 할머니를 추모공원까지 순찰차량으로 무사히 모셔다드릴 수 있었습니다.

박 경장은 “할머니가 말씀은 못 하시니까 연거푸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며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인데도 나름 보람차고 기분이 좋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리운 남편을 보러 나섰다가 길을 잃은 할머니 앞에 짜잔, 나타난 두 명의 젊은 경찰관. 두 사람이 할머니와 종이에 한 자씩 적어가며 나눈 대화는 참 따뜻했을 것 같습니다. 또 두 경찰관이 받은 할머니의 ‘엄지척’은 최고의 칭찬이었을 테지요. 생면부지의 세 사람이 주고받은 배려에 우리 마음도 몽글몽글, 따뜻해집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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