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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세자, 카슈끄지 살해 승인” 공개된 美보고서

카슈끄지 피살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가 2018년 리야드 야맘마 궁에서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를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배포한 이 사진을 놓고 '잔인한 악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SPA·AP뉴시스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승인했다고 판단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DNI는 이날 내놓은 4쪽 분량의 기밀 해제 보고서에서 “우리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를 생포하거나 살해하는 작전을 승인했다고 평가한다”고 적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반체제 인사였던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됐으며 시신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사우디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 가운데 사우디 법원은 카슈끄지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8명에게 징역 7~20년형을 지난해 9월에 확정했다.

이들 가운데는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의 수하도 포함될 정도로 초기부터 왕세자가 배후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그동안 사우디 정부는 왕세자의 개입 여부를 부인해 왔다.

카슈끄지 암살 이후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다른 기관의 기밀 정보를 토대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된 정보 수단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카슈끄지를 살해한 팀에는 왕세자의 승인 없이 참여할 수 없는 개인 경호요원 7명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왕세자는 카슈끄지를 왕국에 대한 위협으로 봤으며 그를 침묵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고 적었다. 또 “사우디 당국자가 카슈끄지에 대한 불특정 작전을 미리 계획했지만, 이들이 얼마나 미리 그를 해치기로 결정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건에 관여한 개인 21명을 적시하고, 이들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대신해 카슈끄지의 죽음에 연루되거나 책임이 있다는 고도의 확신이 있다고 적었다. 미 행정부는 보고서 공개와 함께 76명의 사우디 시민권자에게 비자 제한을 가하겠다고 밝히는 등 제재 조처를 했다.

재무부는 카슈끄지 암살과 관련해 사우디의 전직 고위 정보관료를 제재하고, 사우디 왕실 경비대의 신속개입군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국무부는 이와 별도로 연례 인권보고서 프로그램에서 반체제 인사와 언론인을 겨냥한 사우디와 다른 나라에 대한 문서화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미 의회에선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지난해 7월 DNI의 존 랫클리프 국장은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원 안전과 활동을 약화할 수 있다”고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못 본척하며 무함마드 왕세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대선 기간 사우디를 ‘천덕꾸러기’로 묘사하는 등 사우디 인권 상황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또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DNI 국장에 오른 애브릴 헤인스는 상원 청문회에서 “분명히 법을 따를 것”이라며 보고서 공개 의사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왕세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이번 보고서 공개로 양국 간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듯 전날 왕세자의 부친이자 통치자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사전에 통화하기도 했다. 이날 미국의 제재 대상에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름은 없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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