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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진 전 서울연구원장 “민간 재건축 허용하면 부동산 정책, 한방에 무너진다”

주택 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과잉수요 적절히 분산해야…무분별한 재개발 지정으로 ‘뉴타운 열풍’ 재연 우려

서왕진 전 서울연구원장

“서울시 전체가 공사판으로 바뀌고 주민 간 갈등이 생겨 10년 전으로 후퇴해선 안됩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과잉 수요를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방안이 결합돼야 합니다.”

서왕진(55) 전 서울연구원장은 지난달 25일 퇴임을 하루 앞두고 시청 인근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야 예비후보들이 쏟아내는 부동산 공약에 대해 적극적인 공급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뉴타운 재판’을 우려했다. 서 전 원장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재개발·재건축) 해달라고 민원이 빗발치고 정치가 부화뇌동해 지정해주면 뉴타운 재판이 된다. 공공재개발이 우선 필요한 곳은 해주되 무작위로 지정되고 모두 쫓아가는 식으로 되면 안된다”고 경계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재개발 후보지 공모에 총 70곳이 신청했다. 기존 구역 8곳은 선정됐고, 신규 구역으로 신청된 56곳 가운데 자치구에서 서울시에 추천한 28곳을 검토해 이달말 선정할 계획이다.

서 전 원장은 민간 재건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공공재건축을 통해서도 적정 이익을 확보하고 공공이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데 왜 안되느냐. 버티면 다음 정부에서 민간이 폭리를 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와 서울시가 인내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어렵게 유지해온 부동산 정책이 (민간 재건축을 허용하는 순간)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 전 원장은 “대규모 개발 말고도 저층 주거지 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할 수단들이 있고, 기존 주택의 성능 향상을 위한 리모델링 사업도 충분히 가능한데 너무 신규 주택을 지어서 새 아파트만 제공하는데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공급해주기 위해 입체도시를 생각해볼 수 있고, 컴팩트 시티처럼 도시를 다핵화해서 각 단위들이 어느 정도 자족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면 감염병 시대에 도시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 대한 이해, 부동산에 대한 철학적 바탕이 있어야 정책이 미래지향적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전 원장은 감염병 시대 서울시가 도시 기능과 시민들의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현재 3도심 7광역 중심에서 더 다핵화할 필요가 있다며 그 중간 단계로 300여개 역세권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10분 동네 정책이 있다. 걸어서 10분 안에 가장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21분은 서울시의 생활권 계획인데 1~2개 구가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기 생활권역 내에서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받는, 좀 더 세분화된 다핵화가 필요한데 역세권을 그 거점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며 “300여개 역세권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필수 공공시설들을 조사하고 빠져 있는 것을 생활 SOC로 보충해주어 자족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감염병 위험성이 완화되고 재택근무자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포스트코로나 시대 글로벌 리딩도시로 서울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성장동력 발굴이 중요하며 이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차기 서울시장의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다. 서울이 국가경쟁력을 견인하는 첨단산업의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바이오, 의료분야 신성장동력 사업 발전에 서울시가 테스트베드로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창의적이고 발전된 지식그룹들이 어떻게 형성돼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서울의 압도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대학을 중심으로 서울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릉을 넘어 창동까지 바이오벨트를 만드는 사업이 추진중인데 이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살려나가고 마곡 R&D, 구로금천 G벨리, 상암 DMC, 양재 AI, 여의도 핀테크 등을 활용해 첨단 스타트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시의 재난긴급생활비 지원과 관련해선 “신한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서울시내 상점 매출액이 2019년 100조에서 2020년 91조로 9조원 줄었는데 시민들 소비액은 3조5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왔다”며 “이는 상점에 직접 가서 사던 것이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이전해 간 결과로, 디지털 시대의 변화이고 코로나 시대에 가속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프라인 매출 위주의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매출감소가 심각한 문제인데 지난해 5~6월에는 전년동기대비 매출이 증가했다.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효과가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한식업은 긴급생활비 소비 효과가 컸지만 교육이나 여행 업종의 경우 피해가 엄청난데도 효과를 못 봤다. 그런 분야는 직접적인 지원이 굉장히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구원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경기·경남·충남연구원과 함께 재난지원금 효과를 공동 조사해 연구중에 있으며 4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서 전 원장은 증거기반 정책연구로 서울의 빈곤과 불평등의 지형을 파악해 서울시의 사회보장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시민들이 체감하는 정책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난지원금 선별 방법이나 규모를 결정하려면 개인이나 사업체 소득 수준을 확인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IT는 발달돼 있지만 행정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중위 소득 100%에 대한 추정도 정확하지 않아 나중에 예산이 부족하지 않았나. 증거기반 정책을 위한 행정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자료가 구체화되지 않아 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 전 원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가 잘 돼 있어 가명처리하면 공공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오늘(25일) 한국행정자료 연구자 네트워크도 만들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연구원은 가천대 불평등과사회정책연구소,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서울의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오늘 나온 1차 연구 결과를 심층 분석하고 각 구청의 기초연금 자료를 결합해서 완벽한 개인소득을 산출한 뒤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작업을 2차 년도에 할 계획”이라며 “소득 자산 데이터에 근거해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면 양극화 추세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코로나 시대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크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자영업자, 저숙련노동자의 소득감소가 상대적으로 크고 1분위 소득집단의 경우 소득 감소폭이 매우 낮아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별한 재난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가 큰 약자에 대한 두터운 지원과 선별 지원이 결합된 특별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저학력·저숙련 노동자, 자영업자의 생활환경은 더 나빠질 수 있다”면서 “이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 및 컨설팅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플랫폼 노동자가 실질적인 노동자 지위를 확보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우선 고용보험 가입과 교육을 통한 재취업 지원정책을 추진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서울연구원장으로 3년 10개월 재직했다. 그는 서울연구원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세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서울시정을 선도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구자들끼리만의 연구로는 안되고 외부의 다양한 전문성, 시민들의 현장 전문성이 결합되는 플랫폼 연구기관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내년 창립 30년을 맞아 성숙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연구원이 시정을 선도하는 씽크 플랫폼(think platform)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 복지, 마을정책 분야는 현장 전문가들이 중요하다. 연구원이 현장에 있는 다양한 전문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플랫폼 노동 분석과 방향 제시, 불평등 문제에 대해 연구해야 살아있는 연구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2018년 미세먼지가 심각했을때 집중적인 연구를 진행해 ‘미세먼지 시즌제’ 아이디어를 냈고 서울시가 이를 핵심 정책으로 시행한 뒤 중앙정부도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로 발전시킨 것을 서울연구원이 선도적으로 정책을 제시해 중앙정부 정책까지 견인한 사례로 꼽았다. 그는 “현안 대응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선도적으로 준비하는게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이 감염병이 우리 생활을 규정하고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고 작년 3월 코로나19 연구센터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연구원에는 도시계획, 교통, 보건복지, 행정 등 시정관련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기 때문에 이를 융합해서 함께 연구센터를 만들어 코로나 대응에 대한 평가와 보완책을 마련하고, 서울시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서울시 산하 26개 공공기관과 연계해 싱크탱크협의체를 구성, 각 기관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서울연구원과 결합해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드는 연구 생태계와 산하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치구에서도 구 차원의 연구를 위해 구정연구단을 구성하는데 서울연구원이 지원해 구 단위에서도 각각의 싱크탱크를 보유함으로써 현장과 연계된 체계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체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책을 계승 발전해야 할 가치로 포용정책, 생태적 전환, 소통과 협치를 꼽았다. 그는 “박 전 시장이 2011년 당시 여야 주류 정당 후보들을 물리치고 무소속 후보로 당선된 것은 그 시기 서울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새롭게 풀어내라는 시민들의 강력한 열망이 표출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성장과 개발 만능주의 도시정책에 밀려난 시민들의 삶을 보듬어주는 포용적 정책에 대한 요구, 과잉개발과 소비로 생태적 위기에 처한 서울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어떤 정책이든 시민을 주체로 세워 함께 설계하고 함께 실행하는 소통과 협치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포용과 생태적 전환, 소통과 협치라는 시정의 기본원칙은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서울의 미래를 새롭게 선도해 나가는 미래적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했다.

서 전 원장은 퇴임 후 활동계획을 묻자 “서울 시정에 대한 오랜 경험, 그리고 애정이 있다. 책으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한편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어떤 형식으로든 관심과 참여를 지속할 것”이라며 “박 전 시장과 함께 꿈꿨던 혁신 비전들을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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