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끌어안고 “내가 영화 만든 이유”…‘미나리’ 수상 순간

2021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신의 작품이 호명된 직후 딸을 안고 기뻐하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골든글로브 어워즈 트위터 캡처

“(품에 안긴 딸을 가리키며) 여기 이 아이가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입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일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뒤 영상으로 방영된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메라 앞에 함께 있던 딸을 꼭 품에 안은 채였다. 딸 역시 아빠의 목을 부둥켜 안은 채 “내가 기도했어, 내가 기도했어”라는 말을 작게 속삭였다.

그는 소감에서 “‘미나리’는 가족, 그들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그런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며 “그것은 미국인의 언어, 혹은 다른 어떤 외국어보다도 더 깊은 마음의 언어”라고 말했다.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골든글로브의 규정 탓에 외국어영화상 카테고리로 분류된 ‘미나리’를 두고는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미나리’를 둘러싼 그같은 논란과 비판에 정 감독이 우회적 비판을 한 것이다.

앞서 그는 시상식이 열리기 이틀 전인 26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군에 내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에둘러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NYT는 “이번 (외국어영화상) 논란은 그를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1978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한국계 미국인 2세로 태어난 정 감독이 애초부터 영화감독을 지망한 건 아니었다. 영화를 즐겨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작가 지망생으로 예일대에 입학했다는 그는 “지방할당 쿼터를 채우기 위해 아칸소주 출신인 나를 입학시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고 비교해 내 실력은 끔찍했다”고 기억했다.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제작사 제공

의대 진학을 위한 인문학 필수로 등록한 영화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과제로 실험적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는 조금씩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구로사와 아키라, 왕가위 감독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는 의대 대신 유타대로 진학해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 감독은 그는 “하루에 여러 편 영화를 계속 봤다. 마치 영화로 수련하는 수도승 같았다”고 말했다.

졸업 후 첫 본격 장편 작품은 2007년,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해 찍은 ‘무뉴랑가보’였다. 그는현지에서 아마추어 배우와 스태프와 함께 11일 만에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 한편으로 그는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성공을 거뒀다. 첫 영화 성공 이후 그는 독립영화 감독 대신 영화를 가르치는 교수로 살았다. 그는 모교인 유타대의 한국 인천 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 시작한 게 ‘미나리’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정 감독은 NYT에 “마흔이 되어가면서 인생에서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그렇게 ‘미나리’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그는 “부모님이 영화를 보고 ‘미국까지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다니 굉장히 바보 같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며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엔 그런 고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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