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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 초점] 국민이 발 벗고 규제해달라는 별난 산업

확률형 아이템 논란
게이머들 “법으로 규제해달라” 성토
업계 녹 먹는 단체가 자율규제 감독하는 실정
게임 진흥 위해 털고가야 할 문제


괴이한 광경이다. 기업, 부동산에 대한 제약으로 ‘규제 알레르기’가 만연한 요즈음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규제해 달라는 산업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 이야기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일정 금액을 투입했을 때 무작위적·우연적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지급되는 형태를 가리킨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게이머들의 저항은 극악의 확률에서 최고 아이템을 뽑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pay to win(돈을 써야 이김)’이 가속화되며 게임의 본질인 플레이하는 즐거움보다 습관적으로 슬롯을 돌려 ‘S급 아이템’이라는 잭팟을 바라는 사행 행위가 게임을 하는 주된 이유가 되어버렸다. 일부 게임방송 진행자들은 국산 게임의 랜덤박스 뽑기 콘텐츠로 으레 시청자의 큰 관심을 유도하곤 한다.

게이머들의 성토는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국내 처음 등장한 확률형 아이템은 이후 게임사들이 노골적으로 사행 행위를 표방하며 수억원 상당의 과금을 하다가 가정 불화를 겪는 원인으로까지 확산됐다. 몇 년째 시사 프로그램 단골손님으로 이 이슈가 조명 받는 지경이다. 게이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산업 규제를 외치는 이상야릇한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 의무화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일명 게임법)’ 전부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발의했다. 법안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비율, 획득 확률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이후 정부, 업계, 학계, 법조계 진술인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는 공청회를 거쳐 상임위 법안소위와 법사위의 허들을 넘으면 본회의로 올라가게 된다.

확률형 아이템의 법제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정우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명시 등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으나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때 업계에서 꺼낸 카드가 자율 규제다.

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정 능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2018년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발족했다. 이 단체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 미준수 게임 조사를 주력 사업으로 삼고 지금까지 14회에 걸쳐 확률 미공개 게임을 단속했다. 그러나 산업계의 녹을 먹고 있는 단체가 업계를 제대로 감시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게이머들의 불만은 단순 확률 공개 행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율기구의 감시 필터를 통과한 상당수 게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확률에 또다른 확률을 입히는 방식으로 게이머가 꼭 알아야 할 확률 정보를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조작, 오류 등에 의한 확률 왜곡 현상에 대해서도 자율기구는 제대로 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자율기구 발족 후에도 업계는 사행성의 옷을 제대로 벗지 못했다.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은 5일 논란이 가중되자 “현재 자사가 서비스하고 있는 주요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의 모든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공개한 아이템뿐 아니라 유료로 얻는 2차 확률형 아이템(강화, 합성류) 정보까지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검증할 게이머 참여형 ‘확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약속했다. 이에 더해 ‘무작위’ ‘랜덤’ 등의 용어 사용도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자구책이지만 게이머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전향적 태도에도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대부분 게임 커뮤니티의 반응이다. 이상헌 의원은 넥슨의 입장문에 대해 “과거보다 진일보한 내용이긴 하나 여전히 이용자들의 분노가 크다”면서 “이번 사안의 핵심은 이용자들이 더 이상 게임사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게임사들의 추후 발표가 이용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인지 지켜본 후 차후 의원실 방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동료 의원들께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같이 논의를 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게임 산업은 인공지능, 가상현실, 5세대 이동통신(5G) 등 4차 산업을 주도하는 ‘언택트’ 기술과의 접점이 상당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부는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주기별로 수립하고, IT 업체들은 게임계에 잇달아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달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노년 및 여성 게이머의 가파른 증가세로 게임 인구는 더욱 늘어날 거란 전망도 있다.

사행성 논란은 진흥을 위해 반드시 털고 가야 할 과제다. ‘20조원 산업’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국내 게임 산업이 양 발의 근육이 충분히 붙었는지 돌아봐야 할 시기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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