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6일에 한명…남편·애인에게 죽거나 죽을뻔했다

한국여성의전화, 8일 언론보도 분석결과 발표
가해자 대부분 “자기 뜻 따라주지 않는다고 범행”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던 여성이 최소 228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세계 여성의 날’ 113주년을 맞은 8일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사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97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131명으로 분석됐다. 단순 계산하면 1.6일마다 한 번씩 사건이 생긴 셈이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7명에 달했다. 특히 피해 여성의 자녀에 대한 피해가 37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실제 주변인 피해 사례 중에는 피해자와 그 자녀들을 가해자가 모두 살해한 후 가해자 본인 역시 자살 혹은 자살 시도를 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경우 대부분 ‘일가족 동반 자살’이란 표현을 통해 보도됐으나 그 맥락을 살펴보면 ‘동반 자살’보다는 가해자에 의한 ‘일방적 살인’이란 표현이 훨씬 적합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라며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실제 피해 여성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여성은 20대가 34명(15.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가 34명(14.9%), 40대는 33명(14.5%), 30대는 30명(13.2%), 60대는 13명(5.6%), 70대 이상은 7명(3.1%), 10대가 5명(2.2%)으로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해자들의 범행 동기는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53명(23.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홧김에, 싸우다가’ 등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가해자가 52명(22.8%),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이 34명(14.9%)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자신을 무시해서’ 9명(3.9%), ‘성관계를 거부해서’가 범행 동기인 사례도 6명(2.6%)이었다.

가해자들이 직접 든 구체적인 폭력 사유는 ‘밥을 안 차려줘서’ ‘너무 사랑하는데 헤어지자고 해서’ ‘자려는데 말을 걸어서’ ‘안 만나줘서’ ‘결별 후 다른 남자를 만나서’ ‘여행 가자는 것을 거부해서’ 등 다양했다. 여성의전화는 이에 대해 “언뜻 보면 각기 다른 이유인 듯 보이지만 결국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귀결된다”며 “가해자들에게 피해 여성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어야 하는 존재이자 벗어날 경우 해쳐도 되는 존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남녀 관계 특성으로 인해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이 있다고 짚었다.

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여성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당한 이들은 ‘스스로 피해자임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다. 애인‧가족 등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폭력은 ‘사랑싸움’ 혹은 ‘애정표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법원 판결로도 이어지고 있다. 가해자가 여성의 신체를 만지려다 거부당하자 흉기를 휘두른 사건에서 남성은 범행 1주일 전부터 흉기를 구매해 가방에 넣어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에 사용된 칼이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고, 취업하면 사용하려고 샀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1심보다 5년을 감형했다.

여성의전화는 “이러한 판결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무리 생명을 위협할 정도라도 ‘여성’이 겪는 폭력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072명,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2038명이다. 우리가 ‘분노의 게이지’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2년이나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공식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피해자는 계속해서 위축되고, 가해자는 당당해질 것”이라며 “정부는 관련 법체계를 점검하고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시행하는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승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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