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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성폭력’ 여전… ‘여성의 날’에도 갈길 먼 여성 인권


데이트 폭력 피해자 A씨(27·여)는 8일 “전 애인이 욕하며 소리 지르던 순간, 성관계를 강제하던 순간이 떠오르면 아직도 몸이 떨린다”고 털어놨다. 초반부터 집착이 심했던 A씨의 전 애인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다른 남자랑 몇 번 잤냐’ ‘걸레’라는 욕을 내뱉었다. 차량 안에서 성관계를 시도하거나 촬영을 요구하기도 했다. 폭행 상황까지 내몰렸던 A씨는 지난해 가까스로 전 애인과 헤어졌다.

이별 후에도 데이트 폭력 그림자는 계속 따라왔다. A씨는 한동안 성폭행을 당했던 차와 같은 색의 차량만 지나가면 심장이 떨렸고, 전 애인과 비슷한 모습의 남성이 지나가면 황급히 피신했다. 성관계 영상을 지웠다지만 혹시 어딘가에서 떠도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걱정에 시달린다. A씨는 지금도 낯선 남성과는 친분을 쌓기가 두렵다고 한다.

A씨는 “뒤돌아서면 전 애인이 무릎 꿇고 울면서 빌고, 그러면 또 실수겠지 생각하고 넘어 갔었다”며 “왜 바보같이 당했냐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 상황에 없었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목소리가 나오지만 ‘데이트 폭력’ 피해에 시달리는 여성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00여명의 여성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 위험에 처하는 등 피해 상황에 내몰려야 했다.

2년 전 애인으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당한 B씨(28·여)는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것 자체가 아직도 두렵다”고 전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애인이 관계를 강요하던 그날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수차례 뿌리치면서 B씨 손목에는 멍이 들 정도였다.

애인이 자신의 친구들과 성관계 사실을 희롱거리로 삼은 것을 알게 되면서 B씨 아픔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B씨 애인은 친구들과 취미 삼아 인터넷 게임 방송을 했는데 그 방송에서 ‘○○이 맛있었냐’ ‘나눠 먹자’는 식의 대화를 나눈 것이다. B씨는 “심각한 수위의 조롱에도 애인이 묵묵부답이거나 심지어 웃기도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고 분노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는 최소 97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31명에 달한다. 1.6일에 한 번 꼴로 살해 위험에 처한 여성이 발생한 것이다. 범행 동기는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을 거부해서’가 23.3%로 가장 높았고 우발적 범죄(22.8%), 다른 남자와의 관계 의심(14.9%)이 뒤를 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072명,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2038명인데 공식적인 정부 통계는 없다”며 “여성들이 안전한 ‘이별’을 넘어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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